<뉴이코노미>키보드"QWERTY"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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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고(最高)만이 항상 시장(市場)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기술적으로 앞선 제품이 도리어 뒤로 밀려나고 맥을 못추는 경우들이 잇따른다.비디오 포맷전쟁에서 소니의 베타막스가 VHS에밀려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는 경수로가 오늘의 표준이다.경수로는 콤팩트형으로 육지용이 아닌 美해군의 핵잠수함용으로 개발됐다.고온가스 냉각로 보다 기술적으로 뒤지는 모델이다.
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우주로 쏘아올리자 당황한 미국이 이를 육지용으로 전용,보급을 확대시켰다.이 과정에서 고온가스냉각로는 시장에 명함을 제대로 내밀어보지도 못한 채 경수로에 밀려났다. 퍼스널 컴퓨터(PC)를 대중화시킨 것은 애플 컴퓨터였다.84년 시판된 애플의 매킨토시는 PC의 작동을 보다 쉽고 간편하게 하는 오늘의 윈도우 프로그램에 새기원을 열었다.그럼에도 이를 흉내낸 마이크로소프트에 시장에서 거의1대 9의 열세로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운(運)과 역사적 우연이 지배하는 이른바 「QWERTY의 세계」다.
타자기와 컴퓨터 키보드의 영문글자판 배열은 맨 윗줄부터 「QWERTY…」로 시작한다.편하고 익히기 쉽게 「ABCDE…」로시작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나온다.타자기는1867년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의 인쇄업자 크 리스토퍼 숄스가처음 만들었다.
타자봉을 때려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속도를 빨리할수록 글자봉이서로 얽혔다.이 얽히는 기회를 최소한으로 하기위해 글자판을 4단계로 나누고「QWERTY…」식으로 배열을 일부러 고약하게 만들었다.일반에 보급되자 타이핑교육과 훈련은 이 글자판이 표준이됐다. 이 비효율에 맞서 1879년 「이상적인 키보드」타자기가신제품으로 선보였다.영어단어의 70%를 구성하는 「DHIATENSOR」의 10개글자를 치기좋게 맨 아랫줄에 배열했다.이 친절한 배열에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1932년 오거스 트 드보락이 드보락 단순화 키보드(DSK)를 개발했다.
40년대 美해군에 도입돼 타이핑속도 최고기록은 이 키보드로 다 세웠다.새 발명을 억누르는 기존업계의 음모라고 분통을 터뜨리던 드보락은 40년의 한을 품은채 지난 75년에 죽었다.「남들이 모두 쓰고 있기에…」가 「QWERTY 세계」 의 승부를 가린다. 24일 「윈도우 95」의 시판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을 더욱 궁지로 몰아 넣는다.매킨토시 시장점유율은 현재 12%,99년까지 6%로 떨어질 전망이다.「매스 마케팅」(대량판매)전쟁에서 애플의 참패다.
그러나 운용시스템기술에서 애플은 8번째 개량소프트웨어 코플란드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앞서갈 전망이다.현행 PC의 파워로는 「윈도우 95」를 제대로 활용못해 파워가 강한PC를 다시 구입해야하는 상황도 예견된다.컴퓨터산업체들이 표방 하는 구호 가운데 「매킨토시처럼…」이 「윈도우처럼…」보다 월등히 많다는 점이 애플로서는 위안이다.매킨토시사용자는 2천만명.「QWERTY 세계」에 대한 외로운 도전이다.
〈本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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