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근본주의>8 이슬람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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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돼지고기를 금기(禁忌)시하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또 하나의 금기가 있다.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크롸상이라는 빵이 그것이다.
크롸상은 흔히 프랑스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빵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83년 오스트리아에서 였다.당시 오스트리아軍이오스만 투르크 군대의 진공(進攻)을 수도 빈 근처에서 저지하는데 성공하자 빈의 제빵업자들은 초승달 모양의 롤 빵을 구워 이교도(異敎徒)격퇴를 자축했다.초승달은 이슬람의 상징이자 오스만투르크의 국가문양이었다.
이슬람은 처음부터 오해 대상이었다.이슬람 역사를 말할 때마다빠지지 않는 「한 손에는 칼,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구절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대변한다.이 구절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죽은지 불과 1백년도 안돼 이슬람이 광대한 지역을 석권한데 놀란 유럽인들이 지어낸 악의적 구호일 따름이다.내년부터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 구절은 빠진다.이슬람은 과격하다는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학계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다.
흔히 알고있는 이슬람과 현지에서 접하는 이슬람은 다르다.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면 왠지 과격하고 거칠 것 같지만 직접 만나보면 무슬림이란 말 자체가 「신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만큼이나 그들은 유순하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이맘(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의 자리는 맨 앞에 있다.하지만 그는 20㎝ 가량 움푹 패인 곳에서 예배를 올림으로써 스스로를 낮춘다.다른 종교와 달리 이맘은 신의 대리자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가장 관용적인 종교는 이슬람이었다.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한 기독교도들의 박해로 쫓겨난 유대교도들이 안식을 찾은 곳은 이슬람이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였다.
테헤란大 무하마드 호자티 교수는『원래 이슬람에는 근본주의라는말이 없다』고 강조한다.근본주의라는 말은 1920년대 미국의 광신적 복음주의자들이 벌인 극단적 세속화 반대운동에서 유래했다.이슬람 근본주의는 서구식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일체의 이슬람 운동에 서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수도(首都)로 인식되는 테헤란은 세계 대도시 가운데 범죄율이 가장 낮은 도시다.미국을 「大악마」와 동일시하는 이란이지만 테헤란 시장에 가보면 가장 흔한 것은 미국제품이다. 『우리는 미국의 對중동정책에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사람이나 미국상품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자르디 이란 외무차관의 설명이다.
이란 중서부 이스파한市 마세조메 시장의 여성옷가게.검은색과 회색 차도르가 가게 바깥에 걸려 있지만 가게 안쪽에는 빨갛고 노란 원색의 옷들이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다.
『차도르에도 패션 바람이 느껴진다』고 운을 뗀 점원 알리 레자(30)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검은색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회색.감청색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한다.『겉옷과 달리 이란 여성이 집안에서 입는 옷과 속옷은 서유럽 어느나라보 다 화려하고대담하다』는 그의 말에서 이슬람의 두 얼굴을 본다.테헤란과 이스파한에서 들른 이란 중류가정 여성들은 청바지 차림이 주류였고핫팬티 차림의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권에 대한 오해 배경에 종교적 비합리성이 있음을부인할 수 없다.테헤란 시내 남쪽에 있는 국립묘지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수천명의 지원병 무덤이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이들은『성전(聖戰)에서의 죽음은 천국으 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코란 구절을 외면서 이라크가 깔아놓은 지뢰밭에 뛰어들어 희생된 10대 지원병들이다.소년병들이 목숨을 바쳐 개척한통로로 이란군이 진격했다.국립묘지에서 만난 기무마스 가파리(53)는 조카 사진을 어루만지며『한 가족의 남자들이 모두 지원병으로 나서 희생된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종교와 화해는 가능할 것인가.
***美 2重잣대 반동 급속확산 차세대를 담당할 중동의 대학에 가보면 이슬람권과 서구의 화해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커진다.테헤란大에서는 의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일수록 이슬람 근본주의에 심취해 있다.이들은 「우리(이슬람)」와 「그들(서구)」이라는 2 분법을 곧잘 사용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의이념에 가장 잘 부합하는 단어로 「민주주의」「정의」「자유」를 꼽았다.그러나 동일한 설문에 프랑스 백인들이 선택한 단어는「광신주의」「순종」「서양적 가치의 거부」였다.그만큼 서구세계와 이슬람권의 인식의 간극(間隙)은 크다.쿠르드族을 이라크가 공격할때는「인권탄압」이라며 무력으로 저지한 미국이 터키가 이라크 국경을 침범하면서까지 쿠르드族을 토벌할 때는「테러분자들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서방과 이슬람권의 대립에는 서방의 몰이해와 책임도 크다.특히對중동정책에서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이중잣대는 서방과 이슬람권의 갈등과 오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大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현재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 지도국이 없는 것』이라 진단하고『이데올로기 공백과 경제혼란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급속히 세력을 확산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앞으로 서방과이슬람의 화해전망은 암울하다.』세기말(世紀末)의 세계인들에게 던지는 헌팅턴 교수의 경고다.
[테헤란=李哲浩특파원] 崔聖愛전문기자(중앙아시아) 裵明福기자(북아프리카) 李哲浩기자(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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