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쇄신안 다음 주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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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서울 한남동 특검 브리핑룸에서 99일 동안 진행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 특검은 “성역 없이 철저하게 수사했고,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충실하게 그 진상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조준웅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는 17일 이건희 삼성 회장을 배임·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전·현직 삼성그룹 고위 간부 9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조 특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99일 동안 90여 명의 특검 팀원이 벌여 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소 대상자에는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최광해 전략기획실 부사장, 현명관 전 비서실장, 유석렬 삼성카드 대표, 김홍기 전 삼성SDS 대표, 박주원 삼성SDS 미국법인장, 황태선 삼성화재 대표, 김승언 삼성화재 전무가 포함됐다.

특검팀은 이 회장이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때 비서실(현 전략기획실)을 통해 이를 보고받고 승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은 당시 에버랜드 경영진이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전환사채의 97%를 배정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사건이다. 검찰 수사에서는 이 회장과 비서실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었다.

특검팀은 “이 회장이 2조원대의 개인 재산을 1199개의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하면서 삼성 계열사 주식을 사고팔아 5643억원의 차익을 얻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주식 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1128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공소 사실에 포함시켰다. 또 주식 소유의 변동 상황을 증권감독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도 추가했다.

조 특검은 “이 회장을 비롯한 피의자들을 구속할 경우 기업 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이고, 이들의 신분을 감안할 때 재판 과정에서의 도주 우려도 없다고 판단해 불구속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건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과 법적·제도적 장치 간의 괴리 또는 부조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제기한 삼성 측의 정·관계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에서도 조직적인 로비 의혹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주장한 삼성 계열사의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과 고가 미술품 구입 의혹에 대한 수사에서도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기소로 1심 재판을 맡게 된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이 사건을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민병훈)에 배당했다. 삼성특검법에는 1심 판결은 기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항소심과 대법원 선고도 전심 판결로부터 2개월 내에 마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훈시 규정이어서 재판 상황에 따라 선고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

이순동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은 “오랫동안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특검 수사를 계기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받아들여 쇄신안을 만들고 있다”며 “다음 주 중 이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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