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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반 못 가 섭섭해도 이해 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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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준별로 교과·교실 이동수업을 듣는 서울 목동 한가람고 2학년 학생들이 17일 오후 6교시 국어 수업을 위해 다른 교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17일 오후 1시 서울 목동 한가람고. 5교시 시작 시간 이 다가오면서 학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식당 앞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1학년 이현정(16)양은 “국어 수업을 들으러 반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책부터 챙겨야 한다”며 뛰어갔다. 강지원(16)양은 “아침부터 네 번째 반을 옮기는 건데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어·수학 등의 과목에 한정해 수준에 맞춰 반을 나눈 뒤 이동하는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미국의 고교처럼 학생들이 교사가 있는 교실을 찾아간다. 마음에 드는 과목을 골라 수강하는 대학 강의식 수업은 1997년 개교 이후 11년째 계속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수준별 수업을 포함한 ‘4·15 교육 자율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다. 학생들의 자율 선택에 따른 이동수업을 운영 중인 한가람고가 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식 이동수업=2학년 2반 교실에서 1학년 생물 수업이, 3학년 2반 교실에서 2학년 물리 수업이 진행된다. 교사가 머물며 수업 준비를 하는 교실에 학생들이 찾아가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중 자습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교실도 있다. 남들이 선택한 과목을 듣지 않는 학생들이다. 남강희(17)군은 “대학생처럼 수업 없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선택의 자유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선택을 최대한 반영해 학생 6명이 신청한 물리2 수업도 개설했다. 수업 수가 늘고 교사들의 부담도 커졌지만 이를 감수했다. 이날 오후 일부 2학년생들은 수학 수업을 수준에 따라 A, B반으로 나눠 들었다. 수학 B반에 속한 강모(17)양은 “A반에 속하지 못한 건 섭섭하지만 훨씬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아 만족한다”며 “열심히 해 A반에 들어가야죠”라고 했다.

◇교사 평가로 실력 높이기=사립인 이 학교는 개교 때부터 학기마다 교사들에 대한 수업 만족도 조사를 했다. 당시 이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이 대거 다른 학교로 옮겨 가려 하자 학교 측이 ‘교사 평가’로 수업의 질을 높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학생들이 학기 말에 ‘선생님이 수업에 열심히 임하시나요(0~4점)’ ‘평가 방식은 공정한가요(0~4점)’ 등 8개 문항에 대해 점수를 매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교사 대다수가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받는 수준이다.

어려움도 많았다. 학부모들이 “왜 학생들이 피곤하게 이동수업을 시키느냐”고 항의해 일부 과목의 이동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11년째 교장을 맡고 있는 이옥식 교장은 “개교 초엔 학부모들이 집단 전학까지 시키려 했지만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하는 자율 수업과 교사 평가 등으로 학부모의 우려를 씻어 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학년 딸을 둔 정윤주(44)씨는 “수준별 수업이 걱정됐다. 하지만 아이가 ‘실력에 따라 반을 나눠 효과적으로 배우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 안심했다”고 말했다. 2학년 홍두남군의 어머니 서미정(47)씨는 “아이가 ‘수준 높은 수업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받는 게 신기하다’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성과도 나타났다. 2000년 2명에 불과했던 서울대 입학생이 올해는 6명이 됐다. 연세대는 23명, 고려대는 13명이 진학했다. 2007학년도 수능 때는 전국 수석도 배출했다.

글=백일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한가람고 이동수업은 …

◆ 전교생 : 24개 학급 915명
◆ 수준별 수업 : 영어·수학(전교생 대상)
◆ 과목 선택 이동수업
- 고2부터 대학처럼 각 선택과목 강의 교실로 이동
- 학생마다 시간표 다름
◆ 교사 : 교무실이 아닌 각 교과실에 배치
◆ 평가 : 매 학기 말에 학생이 ‘수업 만족도 평가’/결과는 각 교사에게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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