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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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16)유리그릇 같다고 생각했던 여자.희고 가늘던 그녀의 손.어둠 속에서 자신의 손을 더듬어 잡는 미치코에게 지상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인가.미치코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저는 몰라요.좋은 도자기가 많다는 이야기,거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이 있고 오랫동안 중국의 간섭 같은 걸 받으며 살아왔다는 이야기…겨우 그런 걸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을 뿐이에요.그리고 오빠도 가끔 조선에 대해 말했었지요.』 『전사했다는 그 오빠 말인가?』 『네.』 미치코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수재 소리를 듣던 오빠라고 했었다.나라를 위해서 바친 아들이라면서 의연하게 슬픔을 참아내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그 일로 해서 지병을 얻었다고도 했었다.이름없는 사람들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못할 상처들을 남기며 그렇게 모든 것을 빼 앗아 가는 전쟁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그때 둘은 나눴었다.
계곡에 밤안개가 내리는가.옷이 조금 눅눅해지는 기분이었다.물소리만이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맑고 가깝게 들려왔다.미치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따라 일어서면서 지상이 말했다.
『늦었는데…괜찮겠어?』 미치코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었다. 『염려하지 마세요.』 『바래다 줄 수도 없는 몸이라….』 둘은 마주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미동도 없이 서 있던 미치코가그때 말했다.
『왜 저를 안지 않아요?』 종이에 물이 스며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지상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이제는 잊는다고 했었다.그때 그 역을 떠나면서 다시는 너를 만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아니,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해도 결코 미치코를찾아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다짐했었다.서로를 위해서도 그것만이 길이라고 믿지 않았던가.
누구의 손이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 서로를 품에 안았다. 『미치코.미치코.』 지상의 목멘 목소리가 미치코의 목덜미에 뜨겁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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