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미술의해중간점검-일회성아닌 장기전략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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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중화는 첫걸음,장기 전략은 실종」.
생활과 함께 하는 미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작된 「95미술의 해」가 어느덧 중반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음악이나 문학등 다른 장르에 비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술의 벽을 허물고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원래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됐을까.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아직 남아있고 또 각종 행사가 하반기에 많이 편성돼 있어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7개월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눈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한국미술협회.문화체육부등 다양한 행사를책임지고 있는 주최측은 올초에 계획한 기획들이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는 반면 상업화랑이나 평론가들은 별로 만족스럽지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 미술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은 미술의 대중화와생활화.일부 전문인들의 잔치가 아닌 일상에 파고드는 미술을 목표로 했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았던 이벤트는 5월초순 전국 1백17개 화랑이 동시에 참여한 「한집 한그림 걸기전」.
저명.신진작가 구분없이 1백만원대 이하의 소품을 내놓아 평소비싸기만 했던 그림을 「그림의 떡」처럼 쳐다보았던 일반인들에게저가의 미술품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평소 화랑 문턱 한번 밟아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큰 관심을 보여 미술의 저변 확대라는 취지에 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월25일부터 12일간 열린 「판화미술제」도 유료입장객 2만명에 1천8백여장의 판화가 현장에서 팔리는등 처음 열린 행사치고는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이밖에도 전국순회 미술세미나,전국휘호대회,미술과 음악의 만남축제,오늘의 한국미술전등의 행사로 미술에 대해 문을 닫았던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미술의 해 집행위원회 박광진(朴洸眞)위원장은 『연초 예상했던기업지원이 거의 없어 기대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고 말했다.이두식(李斗植)미협(美協)이사장도 『두차례의 청년작가전등 공약이 순조롭게 진행 되는등 관객동원에 일단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종전보다 미술에 대한 이해는 다소 높였다고 볼 수 있지만 기획들이 대부분 1회성.행사성에 그쳐 일반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린다.체계적이 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술을 진흥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특히 미술의 대중화에 필수적인 사설박물관.공공미술관등 전시공간 확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전주대 이영욱(李永旭)교수는 『현재의 대중화는 정책 홍보라는 구호 차원에 머물러 실효성이 작다』면서 『작업실 임대등작가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개발로 미술 토대를 다지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평론가 정준모(鄭俊謨)씨 는 『내용보다는 형식적 행사에 치우쳐 한국 근.현대미술사 정리등 기초자료 조사를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화랑협회 권상릉(權相凌)회장도 『세계화라는 추세에 걸맞게10~20년 앞을 내다보는 신선한 기획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관계자들은 모두 양도세 부담이 덜어진 미술계가 이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일반인들도 자기 취향에 맞는 그림을 선택하는 안목을 길러야 우리 미술문화가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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