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사례’ 못지않은 ‘낙선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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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어젯밤 낙선한 유시민입니다.”

총선 다음날인 10일 오전 7시30분 대구 수성을에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밝은 목소리가 빗속을 갈랐다. “2만3000표(32.6%)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한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낙선 인사는 이틀간 더 이어졌다. 밝은 분위기 때문인지 그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대선 후보가 맞붙었던 서울 동작을. 총선 이후에도 한동안 한나라당 정몽준 당선자와 민주당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모습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정 전 장관은 3일간 오전 7시부터 출근 인사를 하는 등 선거운동 기간 때처럼 움직였다. 한 의원이 전화했다가 “새벽부터 낙선 사례를 하러 다니다가 잠깐 차에서 주무시고 계시다”는 답을 들었을 정도다. 정몽준 의원도 아침부터 밤까지 유세차를 타고 돌았다.

‘여의도’는 여전히 비어 있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지역구에 머물고 있어서다. “선거운동 때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서울 동대문을 홍준표 의원)는 말도 나온다. 과거 낙선자들은 ‘성원에 감사합니다’란 플래카드를 내거는 게 전부였다. 정치권에선 “아무리 텃밭이더라도 선거에 임박해 공천을 받은 신인이나 지역구를 소홀히 한 중진들이 대거 낙선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지역구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체감한 셈”이란 평가다.

◇웃음과 울음 교차한 낙선 인사=낙선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며칠 전 “텅 빈 유세차를 아들과 타고 낙선 인사를 도는데 참고 참았던 눈물이 그냥 쏟아졌다”고 토로했다. 부산 연제에서 패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낙선에 울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웁니다’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밝은 낙선 인사도 있다. 서울 동대문갑에서 진 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고교를 중퇴한 여자고, 영·호남 출신도 아닌 저를 8년씩이나 국회의원으로 일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경북 안동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허용범씨는 “37%의 유권자가 표를 주셔서 감사하다.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을 지키겠다’=플래카드의 표현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플래카드엔 ‘일’ ‘섬기다’ ‘실천하겠다’는 단어가 많다. 이명박 정부의 이미지다. ‘섬기겠습니다. 실천하겠습니다. 나라와 중랑구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유정현, 서울 중랑갑)가 대표적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당선자(서울 양천갑)는 ‘여러분이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민주당 이광재 당선자(태백-영월-정선-평창)는 “(상대 후보인) 최동규 후보 김승갑 후보 수고하셨습니다’란 문구를 내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무소속 박지원 당선자(목포)는 ‘햇볕정책,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 복장의 박진=서울 종로의 박진 의원은 해군 장교 출신이다. 그는 당선 이후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충무공 이순신 드라마에 나온 장수 복장을 입고 V자를 그려 보였다. 민주당 김성순 당선자(서울 송파병)는 선거 때 이용했던 밥집을,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이란 대어를 잡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당선자(경남 사천)는 5일장을 순례했다. 민주당 신학용 당선자(인천 계양갑)는 “4년간 의원 월급(3억원)을 다 장학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낙선 이후 두문불출하는 인사도 있다. 이방호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치 얘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측근들은 “지역에 어떻게 다니겠느냐”고 했다. 전남 무안-신안의 김홍업 의원은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다.

선승혜·김진경·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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