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세요” 한센병 할머니‘백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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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데레사 할머니가 13일 자신의 '백수 잔치'에서 검단 산하춤굿단이 공연한 태평무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다. 서 할머니의 백수 잔치는 성 라자로 마을이 생긴 지 58년 만에 처음이다.

100세 할머니도, 70세 딸도 눈물을 흘렸다.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은 생일잔치 준비로 분주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고기를 굽고 음식을 날랐다. 주인공은 서데레사 할머니. 1908년 1월 1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딱 100세다.

오전 10시. 서 할머니는 분홍색 한복과 연두색 조끼를 입고 휠체어에 앉아 마을 안쪽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에서는 마을 주민과 신도 200명이 모인 가운데 서 할머니 100세 축하 미사가 열렸다.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던 서 할머니는 미사 도중 김수환 추기경의 축하 메시지를 듣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과 감사의 마음이 겹친 듯 보였다. 할머니 옆을 지키던 딸 박은숙(70·가명)씨도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의 100번째 생신을 자신의 주변 사람들 모르게 축하해 줘야 하는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박씨는 “남편과 아들을 빼고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는 한센병 환자다. 서른 살이던 1938년 박씨를 낳았다. 단란했던 가정에 먹구름이 낀 것은 50년대 중반. 할머니에게 한센병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는 남편과 딸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치료기관과 한센병 집단시설을 전전했다.

서 할머니는 딸이 결혼해 가정을 꾸린 80년대 초반 함께 산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사위와 손자들에게 병을 옮길까 봐 또다시 집을 나갔다.

그러곤 성 라자로 마을을 찾았다. 23년째 그곳에서 살고 있다.

50년 설립된 성 라자로 마을은 천주교 재단 소속이다. 마을 살림은 성 라자로 마을 후원회 회원 1만1000명이 낸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한 달에 1000원에서 5만원까지 다양한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이 한센병이라는 오래된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10년째 성 라자로 마을을 찾고 있는 박귀옥(58)씨는 “치료만 받으면 한센병 환우들도 100세까지 살 수 있다”며 “사람들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사회에서 외면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150명이 살았던 성 라자로 마을은 현재 7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만 10명의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모두 음성환자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외롭다. 매주 한 번 마을을 찾아 돌봐 주는 딸이 있는 서 할머니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한센병 환자인 주민 김모(60)씨는 “주민들 대부분은 가족이 있지만 연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있지만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성 라자로 마을 원장으로 있는 김화태 신부는 “가족들 얘기가 가장 꺼내기 힘들다”며 “주민 모두 가족들에게 한 번쯤은 버림받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성 라자로 마을에 처음 부임했을 때 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잔 하나로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김 신부는 “한국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꺼린다”며 “서 할머니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84년 한센병 퇴치국으로 분류됐다. 국내에서는 한 해 20명 정도만 한센병이 발병하고 있다.

강기헌 기자

◇한센병=과거 나병으로 불렸다. 병을 일으키는 나균은 말단신경과 피부에 침입해 신체를 일그러지고 흉하게 만든다. 한센병은 치료받지 않은 환자에게서 배출된 나균에 오랫동안 접촉한 경우 발병한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95%는 한센병에 자연 저항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나균이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오더라도 병에 쉽게 걸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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