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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인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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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09면

여성영화제가 열 돌을 맞아 국제 행사로 거듭났다. 1999년 여성의 눈, 여성이 만든 영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행사로 출발한 여성영화제는 10회를 맞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집행위원장 이혜경)로 덩치를 키웠다. 10일 막이 올라 18일까지 신촌 아트레온에서 열리는 올 행사는 ‘국제’라는 이름을 단 만큼 변화된 모습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우선 상영작이 많아져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예년보다 40여 편 늘어난 141편을 선보인다. 여성영화제 10주년 기념 제작 프로젝트로 국내외 여성 감독 6인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 ‘텐텐’을 개막작으로 평소 일반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문제작들의 상영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주의적 시각, 비주류의 목소리, 남녀의 대결각을 떠난 대안 모색 등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관객을 끌어 모은다. ‘새로운 물결’ ‘오픈 시네마’ ‘퀴어 레인보’ ‘판타스틱 여성영화: 위반과 유혹의 공간’ ‘몸의 정치학’ ‘걸스 온 필름’ 등 상영작을 분류한 제목만 봐도 이 행사의 성격이 확 들어온다.

올해는 ‘오픈 시네마’ 섹션에 남성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을 초대한 특별전을 마련해 한층 성숙한 여성영화제의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 여성 감독 펑샤오롄 회고전을 기획해 상하이 여성들은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탐색한다. 1988년 중국 최초의 여성영화로 평가받는 ‘세 여자 이야기’를 만든 펑샤오롄은 2000년대에 제작한 세 편의 ‘상하이 3부작’으로 중국 여성의 삶과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손희정씨가 강추한 6편을 소개한다. 문의 02-583-3598(www.wffis.or.kr)

‘레일로드 올스타즈’
감독 체마 로드리게스, 스페인, 2006

기찻길 옆 집창촌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헐값에 몸을 팔면서 일상적인 폭력을 견디며 사는 그들이지만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자존 이유를 찾기 위해 축구팀을 만든 여성들은 이어지는 갖가지 시련 속에서도 축구 연습과 시합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찾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하면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날려버리지”라 노래하는 그들이 세상의 차별을 이겨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축구 속에 펼쳐친다. 시합에 져 맥없이 주저앉은 여성들 모습까지 담아낸 정직한 시선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틱 톡 룰라바이’
감독 리사 고닉, 영국, 2006

제작에 주연 배우까지 1인 다역을 한 리사 고닉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 레즈비언의 다양한 관점을 좇아가며 그가 세상 또는 인간들과 맺는 ‘관계’를 파헤친다. 만화가인 샤샤, 그의 애인 마야는 레즈비언 커플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샤샤가 인공시술이 아닌 일반적인 임신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순간 견고했다고 믿었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하고 고뇌가 찾아온다. 자신들에게 정자를 기증해줄 남자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샤샤와 마야는 자연 임신이 레즈비언 부부에게 얼마나 난해한 문제거리인지 깨닫는다.

‘블라인드’
감독 타마르 판 덴 도프, 네덜란드·벨기에·불가리아, 2007

거대한 저택에 은둔해 사는 귀공자 루벤. 시각장애인인 그는 눈이 보이지 않기에 세상과 담을 쌓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홀로 지낸다. 루벤의 집에서 일하게 된 마리는 이 고독한 남자를 따뜻하게 감싸안으며 차츰 그를 변화시킨다. 그 정성과 온기에 마리를 사랑하게 된 루벤. 하지만 마리 또한 어린 시절 당한 사고로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상처를 안고 있다. 애정을 키워 가던 두 사람 앞에 난관이 찾아온다. 루벤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게 된 것. 마리는 루벤이 시력을 되찾아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면 이별이 찾아올까 봐 두려워한다.

‘하운디드’
감독 앙겔리나 마카로네, 독일, 2006

엘자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50대 여성.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족으로 이뤄진 지극히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엘자는 어느 날 그의 보호감찰 대상으로 16세 소년 얀을 만나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기이한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얀은 엘자와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고, 얀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에 매혹된 엘자는 결국 그 욕망의 덫에 빠져들게 된다. 상반된 인간과 그들의 욕구가 부딪치며 흘러가는 과정을 건조한 흑백화면 위에 풀어놓은 이 인상적인 영화는 2006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XXY’
감독 루치아 푸엔조, 아르헨티나·프랑스·스페인, 2007

영화 제목의 염색체 배열이 가리키듯 주인공 알렉스는 소년의 거뭇한 성기와 소녀의 봉긋한 가슴을 함께 지닌 십대다. 알렉스의 아버지는 이 희한한 자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형외과 의사 부부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정작 의사가 ‘성기를 수술하면 된다’고 하자 그 해결방법에 고개를 젓는다. 남녀의 성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알렉스의 비밀을 알게 된 의사의 아들 알바로는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내면의 혼란을 느끼는 두 청소년은 자연 속에서 성장을 위한 진통을 시작한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대상을 받았다.

‘전장을 울리는 춤’
감독 안드레아 닉스 파인·션 파인, 미국, 2006

20년 내전을 치른 북부 우간다 주민의 일상을 담담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보는 이의 예상과 달리 그들의 삶은 그렇게 비참하지도, 애처롭지도 않아 오히려 눈물이 난다. 우간다 최대 연례행사인 전국음악대회에 참가하려 준비하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모습 속에 전쟁의 상처가 언뜻언뜻 비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반전 메시지가 강렬하다. 여덟 가지 종목의 공연을 준비하며 악기를 두드리고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앗아간 전쟁터의 기억을 그 열정으로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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