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시시각각

정치인과 우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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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는 구두쇠로 소문난 스크루지 영감이 그날 밤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안다. 죽은 동업자와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세 유령이 한밤중에 차례로 나타났다. 다음날 아침 스크루지는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거액을 기부하고 종업원 월급도 올려주는 등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 하긴, 그런 무서운 밤을 보내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우리 전래동화 『토끼전』에 등장하는 토끼도 용궁을 다녀온 뒤에는 아마 많이 변했을 것이다. 다시는 자라의 달콤한 꾐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용궁행을 말리던 너구리 같은 현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됐을 것이다. 큰일을 겪고도 달라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람(동물)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사흘 전 우주로 날아간 이소연씨가 19일 지구에 귀환한 뒤 어떤 소감을 털어놓을지 참 궁금하다. 지구 귀환 이후 이소연씨의 생각과 삶에 대한 자세가 어떻게 달라질지도 주목거리다. 몇 년 전 재미있게 읽은 책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다시 훑어보면서 내내 이소연씨를 떠올렸다.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우주를 여행했던 미국인 12명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그들 대부분은 우주에서 돌아온 뒤 사람이 바뀌었다. 1971년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 탐사를 하고 돌아온 제임스 어윈은 “달 표면에서 신의 존재를 확실히 느꼈다”며 직장인 미 항공우주국(NASA)에 사표를 던지고 전도사로 변신했다. 아폴로 16호로 떠나 사흘간 달에 머물렀던 찰스 듀크도 열렬한 전도사가 되었다. 반면 달에 가기 전에는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던 버즈 올드린(아폴로 11호)은 귀환 후 우울증을 앓다 한때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다른 우주인 존 글렌은 정계에 진출해 상원의원이 되었고, 에드가 미첼은 초능력 연구에 빠져들었다. 앨런 빈은 특이하게도 화가가 되었는데, 그것도 달세계 풍경만 그린다고 한다.

여하튼 우주에 다녀온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달라지는 듯하다. 아폴로 7호에 탔던 돈 아이즐리는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짓처럼 생각된다”고 고백했다. 거의 도를 깨친 수준이다. 다치바나는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우주인)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비전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꼭 우주여행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강렬하고 특이한 체험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변화의 방향이 우주인처럼 ‘보다 넓은 시야와 새로운 비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각자 260억원씩 들여 우주선을 타는 일은 불가능하다.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이소연씨의 귀환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나는 정치인에게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우주여행이나 용궁 체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무사 귀환이 최고다. 이번 총선에서는 현역의원 299명 중 131명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절반도 안 되는 생존율이다. 난생 처음 용궁 여행에서 생환한 예비 초선의원도 137명이나 된다. 하지만 초선이든 재선 이상이든 무사 귀환에 안도만 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주인처럼 국회의원도 살아 돌아온 후에는 확 달라져야 한다. 더 나아져야 한다. 국민이 매번 선거를 통해 보내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뚜렷하다. 제발 사심 없이 일해 달라는 것이다. 사무사(思無邪)를 실천해 달라는 요구다.

아직 축하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당선자들은 오늘밤 잠깐 시간을 내 하늘을 올려다보길 바란다. 이소연씨가 탄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저녁 8시49분에 한반도 상공을 통과한다. 하늘 북서쪽에서 나타나 다리미 모양의 사자 별자리를 지나서 동남쪽으로 사라진다. 매우 빠르게 이동하므로 망원경 아닌 맨눈으로 보는 게 낫다고 한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