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현장르포>5.끝 지도없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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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랍인들은 친절하다.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악수를 청하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길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법이 없다.오히려 지나친 친절이 문제다.
기자가 카이로에서 인터뷰 약속이 있어 집을 찾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그 집이 그 집 같고 그 길이 그 길 같다.동행한 이집트인 운전수는 주소만 갖고 찾는 걸 포기하고 동네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한사람 예외없이 친절하게 알려준다.그러나 알려준대로 가면 아니고,다시 물어 또 가면 아니고…이러기를 30여분.결국 찾기는 했지만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도움을 청한 상대방의 딱한 처지를 못본체 지나칠 수 없어 모르면서도 상상력을 동원해 알려줘야만 직성 이 풀릴 정도로 그들은 친절하다.
집 찾기로 말하면 카이로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리비아에는 아예 주소라는게 없다.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관공서나 사무실 주소를 보면 한결같이 우체국 사서함 번호밖에 없다.지번(地番)제도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도로에 이름이 없으니 지도가 있을리 없다.게다가 이정표(里程標)는 모두 아랍어로 돼 있다.외국인이 처음 트리폴리에 가면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한 외교관 부인이 직접 지도를 만들어 볼 결심을 하고 실행에나섰다.자기 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난 길과 주요 지형지물을 표시하고,자동차의 주행거리 표시기로 거리를 따져 손수 지도를 그려볼 생각을 한 것이다.하지만 결국 헛수고 로 끝났다.『웬 쓸데없는 짓』이냐며 고래고래 호통을 쳐대는 경찰로부터 봉변만 당했다.
1882년부터 25년간 이집트주재 영국총영사를 지낸 크로머卿은 『사람을 허위와 불성실로 타락시키는 정확성의 결여야말로 동양적 심성이 갖는 중요한 특색』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들의 부정확성 때문에 겪은 불편보다 친절에서느껴진 호의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면 어쩔수 없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일까.
[트리폴리=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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