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 기자의 生生 교육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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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위주 수업… 일단 가능성 보였다


변화무쌍한 교육 정책을 온 몸으로 견뎌내는 우리네 교육 현장.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바뀔 때마다 요동친다. 학생과 학부모들도 그에 따라 흔들린다.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할까?” “선생님들은 어떻게 가르치나?” 진학 성적이 좋은 곳, 새 스타일의 수업이 이뤄지는 곳.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그곳에 기자가 간다. “교육 속으로-.” 직접 참여해 독자에게 제대로 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 첫 번째는 한 초등학교의 영어몰입수업 현장이다. 대학생 교생실습한지 겨우 2년 지났는데 현장은 생소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광남초교. 시교육청이 지정한 ‘영어과 교육정책 연구학교’다. 지난달부터 3·4학년 대상으로 수학 과목을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 협동수업으로 영어 몰입식 수업을 하고 있다. 몰입교육은 대통령 언급이후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과연 가능성이 있는 수업인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했다. 사전 준비단계부터 일일 보조교사로 참여했다. 수업이 이뤄진 건(D-Day) 3월 25일.'

D-13 3월 12일
본격적인 몰입수학 수업에 앞서 교사 간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연수회 첫 날. 교문 앞에서 자기 덩치만한 가방을 메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래봤자 초등학생이지. 설마 못 가르치겠어? 이래봬도 사범대 출신인데.’ 괜한 허세로 걱정스런 마음을 달래본다.
 김선균(44) 교감이 반겨주신다. 담당 교사들은 대부분 의욕에 찬 모습이었다. 워밍업 차원의 수업을 진행해 본 소감과 문제점 등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학생별 수준 차 문제. ‘수업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이 날 연수의 핵심이었다.
 교정에서 만난 어떤 아이는 “영어 못하면 수학은 어떻게 해요”라며 걱정했다. 

D-8 3월 17일
몰입 수업을 위해 입국한 원어민 레이머스(여·31·사진) 교사가 연수에 참여했다. 호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고 한다. 인사말을 ‘길게’ 건네오는데… 못 알아듣겠다. “발음이 영국식이라서 그래.” 스스로 위안해 본다.
 수학의 개념을 영어로 설명하는 법, 각종 용어의 영어식 표현 등을 배웠다. 덧셈·뺄셈 등 ‘산수’ 문제들이지만 막상 이해시키려니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힘들어 보였다. 하물며 영어로 하려면….
 나름대로 준비를 해 온 3·4학년 선생님들도 영국식 표현을 다시 공부했다. 예를 들어, 어느 숫자가 다른 숫자보다 더 크다는 말을 보통 bigger로 쓰지만 레이머스 교사의 표현은 greater였다. 새로 알게 된 용어를 다소 나이 지긋한 교사들도 열심히 받아 적는다.
 마침내 보조교사로 참여할 반을 정할 차례다. 3학년 7반을 맡고 있는 김민회(23) 교사가 ‘불운’을 떠안았다.
 
D-4 3월 21일
구체적인 수업 협의 단계. 교실에 가니 원어민 교사가 있었다. 당차게 인사를 건넸다. “Nice to meet you.” 그러나 이내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교감이 김 교사에게 당부했다. “원어민 교사는 보조하는 것 뿐, 지도안 작성에서부터 수업의 마무리까지 담임이 주체가 돼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의 몰입교육 정책 철회 발표와의 상관성을 물었다. 교감은 “우리 학교 연구 수업은 정치적 정책과 상관없는 것이다. 다양한 교수법 연구 차원에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D-1 3월 24일 
인쇄된 교재가 도착했다. 교사들은 “집필진으로 이름이 실린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들뜬 표정이다. 그러나 첫 수업을 앞두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연구수업 주무인 이지연(34) 교사는 “영어에 노출되는 기회를 늘린다는 것이 몰입수학 수업의 목적이다. 활동 위주의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자”며 교사들을 격려했다. 
 
D-day 3월 25일
그 날은 오고야 말았다. 수업종이 울렸다. “Good morning everyone.” “Good morning teacher.” 레이머스 교사와 아이들이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아이들 책상 위에는 노란색 표지의 “Math in English” 교재가 하나씩 놓여있다. 아이들은 집중했다.
 레이머스 교사가 아이들에게 천의 자리 숫자를 영어로 읽어보게 했다. 한국어로는 만, 억으로 나뉘는 숫자를 영어로는 thousand, ten-thousand로 끊어 읽는 방식이 혼란스럽진 않을까 . 하지만 아이들은 발표를 서로 하겠다고 손을 번쩍번쩍 든다.
 다음은 수의 크기를 비교하는 순서. 비교급·최상급 영어 표현이 등장했다. 3학년 영어 교육과정에는 없는 부분이다. 수학 설명을 위해 영어 교육과정의 수준이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둠 활동에서 아이들을 좀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교사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아이도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이내 따라 한다. 또래한테 배우는 것이다.
 이 학교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이전부터 있어 아이들이 영어 환경에 익숙한 편이다. 또 한 반의 99~100%가 영어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기초 토양이 갖춰져 몰입 수업이 원활히 진행된 것 같다. 이런 사교육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수업의 막바지. 줄곧 수업 보조 역할을 하다 교단에 섰다. “How do you like today’s lesson?”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한 학생을 발표시키고, 복습 문제 하나를 냈다. 천 단위의 숫자 두 개를 비교하는 쉬운 문제였다. 정확한 답이 영어로 돌아왔다. “Yes! I did it.”

영어몰입교육이란
영어 과목 이외에 수학·과학 등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정책 공약인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영어 몰입 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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