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상 수상 두 시인 나란히 시집 출간 ‘최첨단’과 ‘변방’ 두 목소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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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당문학상 수상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2006년 수상자 김혜순(53) 시인의 9번째 시집 『당신의 첫』(문학과지성사)과 2007년 수상자 문인수(63) 시인의 7번째 시집 『배꼽』(창비)이 하필이면 같은 날 배달됐다. 이태 전 김혜순은 문인수와 막판까지 경합하다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지난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사위원 김혜순은 기꺼이 문인수의 손을 들어줬다. 묘하다면 묘한 인연이다. 그러나 두 시인의 시 세계는 하등 관계가 없다. 살아온 길도 저마다 다르다. 마흔 살 넘어 등단해 지방에서 활동 중인 문인수가 한국문단 변방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김혜순은 80년대 이후 한국 시단의 최첨단 경향을 대표한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미당문학상 수상자란 사실 말고는 딱히 공통점이 없다. 아니다. 가장 소중한 공통점을 빠뜨릴 뻔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서 나름의 경지를 성취한, 한국 문학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시인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 다시 ‘첫’을 불러내다

첫처럼 매정한 것이 또 있을까. 첫은 항상 잘라버린다. 첫은 항상 죽는다. 첫이라고 부르는 순간 죽는다. 첫이 끊고 달아난 당신의 입술 한 점.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 당신의 손목 두 개, 당신의 첫과 당신. 뿌연 달밤에 모가지가 두 개인 개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며 찾고 있는 것. 잊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잊어버린 것. 죽었다. 당신의 첫은 죽었다.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첫’ 부분

김혜순이 등단 30년을 맞았다. 시집을 열어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30년 동안 김혜순은, 늘 저만치 앞장서 있어서였다. 부랴부랴 쫓아가면 어느새 한 발짝 더 나아간 다음이었고, 그 잰걸음이 먼저 찍은 발자국을 뒤따르는 것도 힘에 부친 참이었다. 김혜순은 30년 동안, 한국 시의 최첨단을 부단히 열어젖혔다.

그 김혜순이 지금 애타게 ‘첫’을 찾고 있다. 왜 오늘 그가 ‘첫’을 불러대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다시 또 걸어나가겠다는 포고다. 아직도 열정으로 목이 타고 삭신에서 홧홧 불기운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한 번도 시인보다 앞장섰던 적이 없으므로 시인이 어디로 발길을 틀지는 시방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도형은 절대로 그리지 않는’ 시만을 고집한 시인이기에 이만큼만 짐작할 수 있다.

변함 없는 건, 예의 그 첨예한 여성성이다. 여전히 김혜순은, 어머니의 밥상 운운하는 시편을 경멸한다. 여성의 부엌 노동을 시에서도 찬양하는 건 남성 평론가의 폭력이라고 조목조목 따진다. 그 날 선 여성성이 이번에도 도드라진다. 2006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모래 여자’는 여자가 바라본 여자 미라에 관한 이야기다. 전장에 나간 남자를 기다리다 굶어 죽은 여자가 미라가 되기까지, 그러니까 사방에서 손가락이 몰려와 여자의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어 다시 남자 앞에 전시될 때까지의 과정을 시인은 낱낱이 까발린다.

시인은 묻는다. ‘엄마는 왜 짤까?’. 이어서 시인은 또 묻는다.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김혜순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78년 동아일보에 평론으로, 79년 ‘문학과지성’에 시로 등단했다. 이후 한국 여성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가장 예민하고 전복적인 감각을 지닌 시인으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시인 김혜순을 드러내는 일화 하나. 평론으로 등단한 직후 한 남성 평론가가 막말을 했다. “식모 이름으로 어떻게 평론을 해먹어?” 그 뒤로 그는 비평을 삼갔다. 대신 식모 이름으로 시를 쓴다. 어미의 시가 아니라 식모의 시다.

# 꿈틀대는 생의 노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만금이 절창이다’ 부분

문인수 시인의 시에선 사람 냄새가 물씬하다. 사람이 없으면 아예 시가 되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작품이 바로 그 사례다.

저녁놀 내려앉는 서해안 갯벌에 시인이 서 있다. 여느 시인이라면 그 숙연하고 장엄한 장면에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어 고개 숙였을 터이다. 그러나 문인수는 애써 사람을 바라다본다. 자연이 이룩한 위대한 절경 앞에서도 시인은 겨우, 갯벌에서 연명하는 할머니의 고된 저녁만을 눈여겨본다. 그러고 보니 진즉에 들은 얘기가 있다. 이른바 문인수의 ‘사람시학’이다.

“수직의 까마득한 절경은 사람이 기어오를 수 없고, 따라서 사람이 붙어 살 수 없고, 사람의 냄새가 없으므로 시가 되지 않는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시집에 들여놓은 시편 59수는 하나같이 꿈틀대고 펄떡이는 우리네 사는 모양을 들여다 본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참담하지만, 우리 꿋꿋이 살아보자고 시인은 시종 다독인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작 ‘식당의자’ 역시 그러하다. 장맛비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는, 하여 누구도 앉지 않는 허름한 식당의자를 지켜보며 시인은 빠듯한 일상에서 잠시 한숨 돌리는 삶의 여유를 읽어낸다. 혹독한 시련의 와중이란 걸 환히 알고 있지만, 시인은 짐짓 딴청을 부린다. 그래서 문인수의 시편은 마냥 눈물겹다. 삶을 절망을 맛본 이가 기어이 부르는 생의 찬가여서다.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마흔두 살 먹어 시인이 됐다. 대구에서 변변한 직업 없이 먹고 놀다 틈틈이 시 쓰고 살았다. 2000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환갑에 맞은 전성기(정현종 시인의 촌평)‘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감격에 겨워 “내일 당장 시를 못 써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가, 시상식 때 해당 발언을 취소했다. 그때 시상식장에서 시인의 아내, 참 많이도 울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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