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야권서 총선 연기 음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탄핵 정국의 와중에 정치권에서 '4.15 총선 연기론'이 솔솔 새어 나오고 있다. 탄핵 역풍을 피하기 위해 야당이 총선 연기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여권 쪽에서 주로 흘리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도 검토할 만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총선 연기론은 탄핵반대 여론이 예상 외로 거세지면서 불거졌다. 이런 분위기가 한달가량 지속될 경우 투표율이 상승하는 등 열린우리당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는 게 연기론의 배경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탄핵안 처리의 반발로 '총선 필패론'이 확산하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차제에 (총선)판을 깨버리자'는 공동 목표를 설정해 총선 연기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특히 야권이 개헌보다는 총선 연기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헌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고, 16대 국회 임기(5월 29일 종료) 내에 처리되기 어려운 반면, 총선 연기는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거법만 고치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5일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부각됐다.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임시국회 소집 자체가 이런 음모와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만약 야당이 총선일을 바꾸려 든다면 그건 막가자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부영 의원도 "(야당들이)이렇게 국정 혼란을 야기해 놓고, 또 국회를 열자는 것은 총선을 연기하려는 음험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부겸 의원은 "개헌은 못할 거고, 총선 연기에 대한 욕심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의원들이 제출한 의원직 사퇴서는 총선 공고가 나올 때까지 처리하지 말자"고 했다.

두 야당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당 차원에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총선 연기문제를 논의한 일이 없다"면서 "개헌 논의도 야3당 대표회담에서 이미 일절 거론치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도 "그런 일은 없다"며 "야3당 대표모임에서 총선을 일정대로 치르고 일절 개헌 논의를 하지 않기로 공언했는 데도 열린우리당이 자꾸 총선 연기와 개헌론을 흘리는 것은 국민을 선동하려는 술수며 치졸한 선거전략"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이날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총선 연기는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허성관 행자부 장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선거 연기는 천재지변으로 선거를 할 수 없을 때에만 해당된다"며 "16일 국무회의에서 총선 투표일인 4월 15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