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처럼 걷고 호랑이의 기세로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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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보는 제 건강의 원천이죠.”
하루 두 시간씩 걷기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는 이준근 씨(60세)는 만나는 사람마다 ‘호보’ 예찬론을 펼친다. 속보 혹은 완보가 걷기의 속도를 뜻하며, 호보(虎步)는 씩씩하고 힘차게 걷는 모양새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준근 씨가 말하는 호보란 사전적 정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준근 씨 나름으로는 ‘호랑이 걸음’을 호보로 정의한다. 손등과 두 다리를 땅에 대고 발과 손을 동시에 움직이며 걷는 걸음걸이다. 손등을 이용해 걷는 호보는 본래 무술인들을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그 범위가 넓어져 민간요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준근 씨가 호보를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무렵, 우연히 소림사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책에 소개된 호법권이라는 권법의 자세가 유독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강아지권, 표범권 등 동물의 걷는 모양을 본 따 만든 권법 중에 호랑이 형상을 흉내낸 호법권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이었죠. 그런데 그러고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법권을 응용해서 호보를 하고 있으니 그게 사실은 대단한 호기심이었던 거죠.”
이준근 씨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총무상임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의 집무실에는 참선용 방석과 호보용 신발 두 켤레, 그리고 장갑이 놓여 있다. 그는 벌떡 일어나 49평방미터 사무실 공간에서 호보 시범을 보였다. 손등을 바닥으로 눕혔다가 다시 올려 걸었다. 그러다가 또 뒷걸음으로도 걸어 보였다. 호보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손과 발을 동시에 들어 움직이는 것. 왼손이 올라가면 발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텔레비전에서라도 호랑이 걸음 걸이를 유심히 지켜보세요. 호랑이는 일자로 걸어요. 앞발과 뒷발이 늘 이렇게 동시에 움직이죠.” 경사로나 계단을 내려올 때는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걸을 때는 다리를 먼저 올리고 손이 뒤따라간다. 이 때문에 이준근 씨의 손등과 팔은 아주 단단하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걸음걸이가 겹쳐 보이는 듯하다.
아스팔트길은 당연히 호보에 불리한 환경 조건이다. “흙길이나 잔디밭이 호보에는 좋아요. 땅이 푹신푹신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주말이 주로 산을 탄다. 그의 걷는 모습을 보고 혹시 장애가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자세가 워낙 독특하다보니 심지어는 검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내조차 그의 호보 걷기를 말리고 나섰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보기에 썩 좋은 자세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감기몸살 한번 앓지 않고 건강을 지키는 모습을 보더니 이제 아내도 가끔씩 따라나서 호보 자세로 걷는다고 한다.
“호보 걷기가 당연히 건강에 좋을 수밖에 없어요. 평상시 움직이지 않는 근육들을 최대로 사용하거든요. 특히 허리와 목 디스크에 굉장히 좋아요. 장운동에도 효과적이고 치질과 같은 항문질환 예방에도 탁월하죠. 단지 호랑이의 겉모습만 따라하는 게 아니라, 건강도 호랑이 급이 된다니까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호보를 전수했다. 1984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niversity of South Carolina) 유학시절 미국 친구들에게 유도와 호보를 가르친 것이다. “덩치 큰 미국 친구들도 저와 팔씨름을 하겠다면 덤벼들었다가 몇 십 명을 단숨에 다 이겨버리니깐 놀라더라고요. 그 뒤로는 저를 인정하고 유도와 호보를 배우더군요.” 1995년에는 미국 캐롤라아니주 정부 보건환경국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도 역시 동료들에게 호보를 전수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직원들에게도 물론 기꺼이 호보를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한 얼굴로 반신반의하며 호보를 따라했던 사원들이 나중에는 굉장히 건강해졌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한다. 심지어 이제 이준근 씨보다 더 열성적으로 호보 운동을 하는 사원들도 생겨났다.
호보의 장점과 호보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사례를 열거할 때마다 이준근 씨의 눈빛은 빛났다. 건강한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강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이다. 눈빛마저도 호랑이를 닮아버린 듯하다.

정유진 객원기자 yjin78@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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