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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GP506 ‘소대원 몰살’ 비무장지대서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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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도대체 그날 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GP506’은 최전방 경계초소의 폐쇄성을 이용해 인간의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GP(Guard Post). 비무장지대 안에 자리 잡은 ‘최전방 경계초소’다. 주된 임무는 북한의 군사활동을 최전선에서 감시하고 유사상황 발생시 즉각 대응하는 것. 비무장지대 안에 있지만 GP병들은 전원 개인화기로 중무장하며, 방탄복과 실탄을 지급받는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군인도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군대 속의 섬 같은 곳이다.

공수창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GP506’은 이 물샐틈없는 밀폐용기 같은 GP에서 벌어진 소대원 몰살 사건으로 시작한다. 현장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체들이 즐비하다. 생존자는 혼수상태에 빠진 강 상병(이영훈) 한 명뿐이다. 아내의 빈소를 지키던 군수사관 노 원사(천호진)에게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을 뚫고 군 장성이 찾아온다. 사망자 중 참모총장의 아들 유 중위(조현재)가 있으니 속히 사건을 마무리짓고 유 중위의 시체를 찾아오라는 지시다. 데드라인은 새벽 6시다.

노 원사는 수색대를 이끌고 현장으로 가지만, 단서는 강 상병이 남긴 캠코더가 유일하다. 테이프 속에서 도끼를 들고 온몸을 피로 범벅한 강 상병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리 부대원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이것이 발견됐을 때 우리 모두 죽어있어야 한다.” 누군가 테이프 뒷부분을 훼손해 진실은 알 수 없다. 수색대는 미로처럼 설계된 GP 안을 뒤지다가 숨어 있던 유 중위를 발견한다. 그러나 유일한 생존자는 입을 굳게 다문다. 노 원사는 시체마다 기괴한 흔적이 있고 쥐가 시체에 덤비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곧 수색대 사이에서는 감기 증상과 비슷한 의문의 질병이 돌기 시작한다.

‘GP506’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뚜렷한 영화다. 이 영화는 정교하게 짜인 미스터리 스릴러가 되고 싶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큰 골격을 이루는 몇몇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소대원 21명과 수색대원 21명. 앞선 자와 뒤따르는 자의 숫자를 똑같이 맞추고 수색대원에게도 과거 소대원들에게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겪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로 노 원사 역시 강 상병이 했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 중첩된 구조를 떠받치는 세부 설정은 미흡하다. A라는 현상을 보여준 후, ‘사실 A는 B 때문이었다’는 증명을 해줘야 하는 게 미스터리의 기본인데 ‘GP506’은 그러지 못한다. 가령 수색대는 GP 의무실의 약통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만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그리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 ‘불친절한’ 영화이기보다, 괜찮은 미스터리를 만들기 위한 욕심에 단서를 과하게 늘어놓았던 탓으로 보인다.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노 원사의 ‘선택’에 100%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GP 안에 번진 이상한 질병 증세도 마찬가지다. 증세에 대한 정확한 설명 대신 영화는 ‘에일리언’을 떠올리게 하는 공포영화 설정을 끼워 넣는다. 이에 대해 공 감독은 시사회 기자회견에서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고민도 많이 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고육지책인 듯싶지만, 영화는 모호해진 인상이다.

‘장르적 성취’라는 항목에선 다소 감점이 됐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GP506’의 기획의도와 뚝심은 폄하하기 힘들다. 한국 극장가는 20대 여성관객이 주 관람층이다. 이런 현실에서 여배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군대 이야기’에 스릴러라는 비인기 장르로 도전장을 내민 것은 우직함 그 이상이다.

그 우직함은 ‘알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군대 소재 영화를 만든 공 감독의 간단치 않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꽃다운 청춘들의 절망과 공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의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주목! 이 장면

‘GP506’의 공포 중 상당 부분은 폐쇄적인 공간 자체에서 우러난다. 제작진이 ‘제3의 주인공’이라 부르는 GP 세트는 6000평 규모 부지에 외부 세트 14개, 실내 세트 12개로 이뤄졌다. 공 감독의 주문은 “공간이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한다”는 것. 사실적인 질감 구현과 세부 묘사를 위해 제작진은 자료 조사는 물론, GP에서 복무했던 사람들과 인터뷰도 했다. 미로 형태로 복잡하게 설계된 탓에 배우들과 스태프가 촬영 중 자주 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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