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쓰레기가 옷감되는 친환경의 ‘매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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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음료수나 생수병을 수거해 의류용 실을 뽑는 곳이 있다. 손수건이 꽃가루로 바뀌고 모자 안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는 마술이 아니다. 경북 구미의 효성 폴리에스터 공장에선 지난달 초부터 폐(廢) 페트병을 활용해 의류용 실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6일 공장을 방문했다. 권기수 공장장의 시선은 2m 높이의 배합통에서 하얗게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폴리에스터 원사에 꽂혀 있었다. 그는 “350mL 페트병 6개면 반팔 티셔츠 한 장 분량의 실이 나온다”고 말했다. 페트병이 폴리에스터 실로 바뀌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단 폐 페트병을 세척해 잘게 썬 뒤 고열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해 쌀 모양의 페트칩을 만든다. 그는 “페트칩을 배합통에 넣고 250도 안팎으로 다시 녹여 미세한 노즐을 통해 방사(紡絲)하면 된다”고 말했다.

방사된 실은 순간 가열됐다 식혀져 3㎏씩 둥근 실패에 감긴다.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실의 두께는 머리카락의 10분의 1~100분의 1.

권 공장장은 “폐 페트병 33개 정도면 폴리에스터 실 1㎏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실은 내구성이 강하고 어떤 형태로든 봉제할 수 있으며 염색도 잘 된다. 등산복·운동복 같은 아웃도어 의류는 물론 자동차의 시트·천장 소재로 사용된다. 페트병에서 폴리에스터 실을 뽑을 수 있는 것은 폴리에틸렌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조봉규 폴리에스터PU장은 “원유에서 걸러낸 폴리에틸렌으로 실을 뽑을 때보다 산업폐수·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훨씬 적다”고 말했다. 폴리에틸렌을 원료로 실 1㎏을 만들면 이산화탄소 1.71㎏이 발생한다. 페트병을 쓰면 0.81㎏밖에 나오지 않는다.

원유는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량까지 줄일 수 있으니 효성은 막대한 이익을 볼까. 권 공장장은 고개를 저었다. 페트병 재활용 반팔 티셔츠는 폴리에틸렌 원료 제품보다 2000원 정도 비싸다. 권 공장장은 “페트병을 수거하고 세척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재활용되는 페트병은 31% 정도지만 국내의 재활용 비율은 통계마저 없다. 판로도 고민이다.

성효경 마케팅팀장은 “국내에선 재생원사는 값이 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치를 인정해 주는 미국 업체가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아웃도어 업체인 파타고니아·노스페이스,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아디다스, 의류 업체 리바이스 등이다. 이들은 자연친화적이란 기업 이미지도 높이고 소비자 호응도 좋아 재생원사를 선호한다고 한다. 또 일본은 정부가 나서 재생원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국내엔 그런 뒷받침이 없다.

이 기술은 그래서 사장될 뻔했다. 효성은 이미 5년 전 이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시장이 없다는 이유로 상용화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원자재난이 가중되고 친환경적 재생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

구미=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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