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마케팅 거장 레지스 매키너 인터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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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29면

삼성전자가 28일 주주총회에서 올 매출 10% 성장과 2007년 수준의 순이익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소니의 LCD 합작선 전환, 특검 수사 등 안팎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지만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케팅 대부로 불리는 레지스 매키너(66·사진)는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삼성은 역시 공격적이지만 외형 확대보다는 어떤 회사가 될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중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기술력은 양날의 칼”

그는 ‘실리콘밸리 보이즈’로 불리는 미국의 첨단기술 전문가들에게 1960년대부터 시장을 읽고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온 사람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충만하지만 기술밖에 모르는 이들이 성공한 기업을 일굴 수 있도록 코치를 해왔다. 인텔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의 마케팅 전략이 매키너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삼성 경영진은 위기의 순간을 맞아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자문하고 답을 내놓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매키너는 “IBM과 애플·HP·델·소니도 위기를 겪었고, 해답을 찾기 위해 부심했다.

IBM과 애플은 길을 찾는 데 성공했지만 소니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고 말했다.

IBM은 93년 80억 달러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컴퓨터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루이 커스트너가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그는 컴퓨터 자체보다는 IBM이 세계 컴퓨터 산업을 이끌어 오면서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IT 서비스업이라는 길을 찾아내 변화에 성공했다. 애플도 MS에 밀려 90년대 초·중반 고전했다. 하지만 사내 권력 다툼으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90년대 말 복귀해 애플이 나아갈 길을 전면 수정했다. 컴퓨터 제조회사에서 ‘디지털 소비재 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반면 소니는 최첨단 디지털 소비재를 개발해 내놓았으나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처럼 시장이 열광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회사 내에서 개발된 기술만을 중시하는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매키너의 진단이다. “소니는 회사 내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한다. 자사 기술력에 자만한 나머지 외부 아이디어나 기술을 무시하고 회사 내 각 부문에서 개발된 좋은 기술을 제대로 융합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빈틈을 공략해 소니의 시장인 ‘디지털 소비재 시장’을 재빨리 잠식하고 있는 게 애플이라는 설명이다.

매키너는 “삼성도 소니처럼 복합 IT 업체의 성격을 띠면서 세계 최정상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런 회사는 부문 간 소통에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 만큼 구성원 간 아이디어를 융합하는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기술보다는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시장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내면 필요한 기술 등은 세계 곳곳에서 조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뭐든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매키너는 ‘세계 최초’와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세계 첫 마이크로프로세서(인텔)와 개인용 컴퓨터(애플), 유전자 조작 식품(제넨테크)의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아메리카온라인(AOL)과 애플·인텔·MS 등이 막 출범할 때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줬다.

40년 넘게 첨단 산업의 첨단을 지켜온 그가 불변의 진리로 느끼는 게 있다. 리더십이
흔들리면 어떤 혁신도 힘들다는 고전적인 원칙이다. 그는 “IT 업종은 끊임없이 시장 상황이 변하고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기 때문에 경영진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회사가 더 큰 위기를 겪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리더는 경영 외적인 충격이나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모든 역량을 아이디어 개발과 시장 개척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그가 자문을 하고 있는 MS가 야후 인수를 시도하고 있는 데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최근 MS 경영진과 마케팅 회의를 끝냈지만, 내용은 기밀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MS의 야후 인수 시도는 유저(사용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MS와 야후의 결합이 포털 서비스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합쳐봐야 별다를 게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현란한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도 M&A 이후에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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