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형대한민국CEO] 우린 안 망한다, 남과 똑같은 건 안 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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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업 나우콤의 문용식(49·사진) 대표는 웃는 상이다. 한번 웃으면 온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다. 하지만 웃음을 거둬들이면 완전히 딴사람이다. 눈매가 보통 매서운 게 아니다. 온실서만 살아온 인생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얼굴이다.

2002년 여름 이 회사 자금담당자 한 명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붙는 회사 통장 잔액에서 부도 위기를 짐작한 듯했다. 문 대표가 한 해 전 취임했을 때 이미 누적적자가 110억원이던 회사다. 1990년대 3대 PC통신의 하나였던 ‘나우누리’로 쌓은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직접 거래처를 쫓아다니며 석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새로 시작한 인터넷 파일저장 사업 ‘피디박스’로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텼다. 석 달 뒤 정말 돈이 돌기 시작했다. 이듬해 흑자로 전환한 나우콤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냈다. 지금은 이 분야 점유율 1위(랭키닷컴 기준)로 가입자가 1500만 명에 달한다.

그때 참 힘들었겠다고 했더니 또 씩 웃는다. 이미 취임 때부터 다들 망해가는 회사 사장 맡지 말라고 말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면 길이 열린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빵잡이’다. 교도소 갔다 온 운동권 출신을 그렇게 부른다. 서울대 국사학과 79학번인 그는 세 번에 걸쳐 5년1개월을 창살 안에서 보냈다. 85년 초대형 시국사건인 민주화추진위원회 ‘깃발’ 사건 때 5공 정권은 그를 거물 취급했다. 민추위 위원장이던 그는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극심한 물고문을 당했다. 서울 올림픽이 끝난 88년 10월에야 교도소 문을 나섰다.

한 선배가 출소한 그를 세운상가로 끌고 갔다. 100만원을 들여 컴퓨터를 한 대 사줬다. 앞으로 밥벌이하려면 이거라도 배우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그는 “그때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92년 나우콤의 전신인 한국출판정보통신에 창립 멤버로 들어간 뒤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팠다. 94년 시작한 PC통신 ‘나우누리’의 이름도 그가 지었다. ‘좀 더 나은 세상’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회사는 비온 뒤 죽순 자라듯 쑥쑥 커갔다. 문 대표도 전략기획팀장·서비스마케팅본부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2000년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PC통신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위기가 찾아왔다.

나우콤은 특이한 회사다. 지금까지 최대주주가 5번이나 바뀌었다. 그중 세 번은 모기업이 부도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회사인 나우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2002년 위기 역시 사업 다각화로 넘겼다. 조직원의 관계가 끈끈할 수밖에 없다. 문 대표가 주변의 만류에도 선뜻 최고경영자를 맡은 것도 그래서다. 그는 “우리는 사이버 세상의 하이에나”라고 말했다. 사자만큼 잘나진 않았어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나우콤은 최근 2∼3년 새 온라인 게임 ‘테일즈런너’,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종합 인터넷 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올해 초엔 보안솔루션 업체 윈스테크넷과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인터뷰 끝무렵 문 대표는 “창조 경영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 왔다. 잠시 머뭇대자 “회사 구성원이 공유하는 ‘스토리(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우콤의 스토리는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독창적 서비스와 강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전 직원의 부모님 생신 때 자필 감사편지를 쓴다. 벌써 6년째다.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이다. 2004년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꿔줬다. 사장이 이렇게 나오면 직원들도 한눈 팔기 어려워진다.

그는 5년 내에 기업가치 1조원짜리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코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현재 1000억원이 채 안 된다. 10배 성장이란 ‘당찬’ 목표를 이뤄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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