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만은 꼭!] 生이 떠난 몸에도 삶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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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유쾌하고 발랄하다. 그러나 섬뜩하다."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집 '오빠가 돌아왔다'광고 카피인데, 신간 '스티프'에 대한 느낌으로도 딱이다 싶다. 단 앞뒤 문장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죽음과 사체(死體)라는 소재는 섬뜩하다. 그러나 유쾌하고 발랄하다." 추천의 말을 쓴 이원택(해부학.연세대 의대) 박사의 말로 그 느낌을 확인해 보자.

"무거운 주제를 매혹적인 읽을거리로 바꿔놓았다. 저자의 솜씨가 경탄스럽다." 의학 다큐멘터리 '스티프'저자는 본디 여행칼럼니스트.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극대륙을 세번이나 다녀왔던 이 맹렬여성은 "남극보다 더 낯선 사체"에 뛰어든 이 책으로 지난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논픽션 톱10에 선정됐다. 죽은 뒤 딱딱하게 굳는(stiff) 몸의 과학과 어두컴컴한 역사를 다룬 이 책은 첫머리부터 사람을 기겁하게 한다.

"인간 머리는 통구이용 닭과 크기.무게가 비슷하다. 오븐용 쟁반 위에 놓인 40개의 머리가 얼굴이 천장을 향하도록 놓여 있다. '라벤더 빛 덕분에 부활절 파티 같은 경쾌한 분위기이군요'. 이렇게 말한 이의 이름은 테레사다. 머리에 덮인 라벤더빛 비닐 보자기 때문이다. 머리 하나에 두 사람씩이다."(19~20쪽 발췌)

성형외과의의 지도 아래 펼쳐지는 의대 풍경인데, 감정을 철두철미 배제한 즉물적인 묘사는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기증된 사체들이 살아있는 몸 이상으로 과학.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점을 보여준다. 심장이식 수술도 참관하면서 근대의학 초창기에는 실습용 시신 확보를 위해 시신 도굴이 유행했다는 정보도 슬쩍 들려준다. 흥미로운 것은 특유의 유머감각.

일테면 부패과정에 들어간 시신은 눈두덩은 푹 꺼지지만, 배는 유독 팽창한다. 박테리아들이 활동하며 배출한 가스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하시엔다(파리유충)들이 바통을 이어 활동한다. 유충들의 움직임은 뻥튀기를 갉아먹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글 일부만 떼내면 경박하기조차 할 이 책은 충격효과를 노린 엽기상품일까? 정확히 그 반대다.

이런 대목. 뇌사(腦死)환자에게서 장기를 떼어내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짚는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사체를 두고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까, 또 정신과 영혼이 사라지고 시신만 남는 순간은 정확하게 어느 때일까를 둘러싼 수세기간 혼란의 연장선이다."(192쪽) 따라서 면벽(面壁)수행이 아니라 '사체를 앞에 둔 수행'이 이 책이다. 종교적 높이의 깨달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인용대로 불경 '염처경'에는 묘지에서의 참선수행이 나온다. 수행승들은 분해돼 가는 시신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육체와 삶 자체가 덧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논픽션은 이래야 한다'는 모델로도 읽히는 이 훌륭한 책의 분위기를 무리없이 옮긴 번역 역시 만족스럽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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