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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모르고 … 계파 만들고… 공무원 보면 답답한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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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여성부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서울 무교동 프리미어 플레이스 빌딩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右>이 뒤따르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대를 맞아 공직 사회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인재가 들어와야 한다”며 “특히 외국인 공무원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안보·보안 및 기밀과 큰 관계 없는 투자유치·통상·산업·교육·문화·도시계획 분야에서 외국 인재들을 등용해 공무원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 해양수산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사무실의 멀쩡한 가구와 집기류를 내다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한 와중에서였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지난 한 달간의 핵심 프로젝트는 ‘공무원 의식개조 사업’이었다. 지난 10일부터 이어진 부처 업무보고는 공직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이 대통령의 메시지로 채워졌다. “구태의연하게 군림하는 공직자에서, 부지런하고 창의적인 국민의 머슴으로…”가 핵심 화두였다.

이 대통령의 ‘공무원관(觀)’은 갑(甲)의 위치에 서 있는 공무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던 과거 CEO 시절 ‘을(乙)의 추억’과, 서울시장 4년간 익힌 ‘공무원 다루기’ 노하우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이 대통령은 한 사회 부처 업무보고서를 읽자마자 “완전히 모범답안만 써놓았네”라고 질책했다. 인수위에서 논의된 과제만 되풀이하며 제목만 그럴 듯하게 바꿔 놓은 보고서였다. 이 대통령은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지 액션 플랜이 전혀 없다”고 꾸짖었다. “내가 하는 일이 창의적인지 항상 생각하라”는 지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머리를 쓰지 않는 구태 공직자’의 대표 케이스로 지적받은 것이다.

외교통상부 보고 비공개 토론 시간에 이 대통령은 “외교부는 함께 모여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계보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장·차관 워크숍에선 “이란·이라크 전쟁 때 CEO로서 전쟁 지역을 방문했는데 외무부에서 공문이 하나 날아왔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근데 가려고 하니 말리지는 않더라. 문제가 생겼을 때 면피하려고 문서만 하나 띄워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재팬 스쿨’과 ‘워싱턴 스쿨’로 불리는 외교부 내의 오랜 계파 문화와 면피 의식에 대한 쓴소리였다.

다른 부처 업무보고에선 관련 통계를 묻는 질문에 한 간부가 실제 통계의 10분의 1 수치로 답했다가 혼쭐이 났다. 현장을 모르고 상급자 눈치만 살피는 이런 공무원은 이명박 정부의 ‘퇴출 1순위’ 라고 청와대 측은 얘기한다.

반대로 이 대통령은 “‘똑똑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창의적이면서도 겸손한 공무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창의’ ‘헌신’ ‘머슴’은 이 대통령이 제시한 새 정부 공무원의 키워드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군림하지 마라. 우리가 조금 힘들면 국민은 그만큼 편해진다”거나 “농사 짓는 사람의 심정으로 가야 한다”며 ‘공무원 머슴론’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관료 조직을 나쁘게만 보는 게 아니다. 유능하니 발상만 전환하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기대”라고 설명했다.

글=서승욱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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