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실패한 농심과 동원F&B 은폐하려다 불신만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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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28면

국내 대표적 식품회사인 농심과 동원F&B가 위기에 빠졌다. 농심의 장수 상품인 새우깡에 생쥐 머리의 일부가, 동원의 대표 상품인 참치캔에 부러진 칼날이 이물질로 각각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예상치 못한 일에 두 회사는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제조 과정의 실수도 문제지만 정작 사고가 터진 이후 대처 방식도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다. 특히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농심이나 동원 모두 문제 제품을 신고한 소비자에게 적당히 선물을 줘 무마하려 했다.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해 해결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식품 대기업으로 가져야 할 책임감이 결여됐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근본적으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런 원칙이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 대응이 좌우

예전에 이런 사건은 묻혀 버리곤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언론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사안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소비자 의식도 크게 향상됐다.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기업 윤리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과거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일도 법적·도의적 책임을 묻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측면에서 농심의 초기 대응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18일 농심 고객상담실에 “노래방 새우깡에서 생쥐의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자체 조사 후 “단순 탄화물인 것 같다”며 신고자를 무마하려 했다. 이때 정확한 실태 조사를 벌여 리콜 조치를 했다면 농심은 오히려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도 있었다. 위기관리에 실패하면 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농심 주가는 새우깡 사건이 알려진 18일부터 21일까지 5.7% 떨어졌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4.5% 오른 것을 감안하면 10%가량 떨어진 셈이다.

홍보대행사 뉴스컴의 박수환 사장은 “사건 초기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도 있고, 봄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다”며 “농심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했더라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비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이어 “국내외 위기관리 실패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요인이 진실 은폐와 거짓말”이라며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실제 2000년 6월 일본에선 악재가 닥쳤음에도 초기 대응을 잘해 기업의 신뢰를 높인 사례가 있다. 일본의 안약업체인 산텐제약에 협박장이 배달됐다. 2000만 엔을 송금하지 않으면 유독 화학물질인 벤젠을 넣은 안약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협박 사실을 공개하고 전국 유통망에 배치된 제품을 전량 회수해 폐기할 것을 약속했다. 일주일 만에 일본 열도 전역의 소매점에서 이 회사 제품 250만 개가 모두 회수됐고 제품에 대한 TV 광고도 중단됐다. 사건 공개 10일 만에 오사카의 한 편의점에서 범인이 체포되면서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종결됐다. 이후 산텐제약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거꾸로 코카콜라는 1999년 6월 9일 벨기에에서 벌어진 한 사건에 잘못 대처해 숙적인 펩시콜라에 밀리는 결과를 자초했다. 코카콜라는 당시 콜라를 마신 120명이 구토와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자 역학조사에 나서 일주일 만에 탄산가스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냈다. 문제는 조사 기간 중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던 것. 이로 인해 유럽에서 코카콜라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그해 코카콜라의 수익은 전년에 비해 31% 줄었고, 이때 펩시콜라는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디어를 적으로 만들지 마라

최악의 위기관리 실패사례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엑손 발데스호의 알래스카 해상 오염사고다. 실패의 이면에는 언론을 극히 싫어했던 최고경영자가 존재했다. 89년 3월 24일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는 알래스카 유전에서 채굴한 원유를 싣고 캘리포니아로 남진하다 암초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원유 25만 배럴이 쏟아져 알래스카 청정해역이 오염됐다. 이때 미국 5대 기업인 엑손의 회장은 로렌스 롤. 그는 평소 언론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언론인을 극도로 싫어했다. 사건 발생 뒤 엑손 본사는 회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또 사건을 자회사인 엑손선박의 책임으로 국한하려 했다. 엑손선박의 최고경영자가 사고 현장을 방문한 것은 사고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이후 롤 회장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TV에 출연했다.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은 기름 제거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롤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기계적인 소소한 계획을 일일이 다 검토하는 것은 세계적인 대기업 회장이 할 일이 아니다.” 불에 기름을 확 끼얹는 순간이었다. 사고가 난 지 2주가 지나 그가 현장을 방문했으나, 그 사실을 아는 언론인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불러온 결과는 참혹했다. 엑손은 벌금과 정화 비용, 매출 감소 등으로 인해 최소 7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

위기 상황에서 미디어를 관리하는 최상의 방법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정전 사고는 이런 측면에서 성공적인 위기관리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사건 발생 때부터 종결 때까지 매 시간 단위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회사 홍보실 심재부 부장은 “사고 초기에는 우리 말을 믿지 않던 언론인들도 시간이 갈수록 신뢰를 보여 줬다”고 말했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라

전문가들은 위기관리가 21세기 기업 경영의 중요 과제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미 MBA 스쿨들이 경쟁적으로 위기관리를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의 캘로그스쿨은 9월 학기 초 10회에 걸쳐 위기관리 과목을 가르친다. 이곳을 졸업한 베인앤컴퍼니의 김태윤 컨설턴트는 “회사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사례 위주로 자세히 배웠다”고 전했다.

한국리스크관리학회는 ‘리스크 관리상’을 줄 목적으로 지난해 국내 주요 기업의 위기관리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올 3월로 예정했던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한 기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두철(상명대 산업대학장) 학회장은 “기업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모든 위험 요소를 분석한 뒤 예방책과 사후 대책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국내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심 측도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이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외국 기업도 위기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는 곳은 드문 게 현실이다. 세계적 위기관리 전문가인 마이클 레지스터는 자신의 저서 '전략적 이슈 관리 PR'에서 “많은 기업이 위기 상황의 홍보 계획을 문서로 만들어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진 다국적기업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준비하고 주기적으로 도상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진출한 한 다국적 식품회사의 관계자는 “매뉴얼에 따라 본사는 물론 세계 각국 현지 법인이 해마다 1~2회 가상 훈련을 실시한다”며 “이때 최고경영자는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 연습을 한다”고 전했다.

뉴스컴 박 사장은 “회사를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기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그에 따른 위기관리 매뉴얼을 준비해야 한다”며 “매뉴얼에는 이해당사자의 연락처와 사내 담당자 명단은 물론 홍보 목표와 대응 전략 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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