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이라는 안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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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28면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진다. 미국 5위 증권사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지난주 초 시장엔 공포감이 만연했다. 하지만 주 후반 골드먼삭스와 리먼브러더스의 실적이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시장은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시장이 호재와 악재 사이에서 춤춘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방향을 바꾸는 속도가 너무 빨라 숨 쉴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투자자들에겐 이런 상황이 답답하고 지루하다. 추세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개 속에서 운전할 때와 비슷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직까지 투자 신호등은 계속 빨간 불이다. 미국 경기 선행지표는 5개월째 내리막이다. 고용 사정을 나타내는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도 예상치를 웃돌았다. 골드먼삭스와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신용 전망이 강등되는 등 금융 불안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6개월간 3%포인트나 내린 금리 효과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정책 금리를 내려도 모기지 금리는 여전히 고공을 맴돈다. 국제 상품가격 급락도 금리 효과와는 무관해 보인다. 희망적인(혹은 정상적인) 시나리오는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고, 원유·광물 등 상품시장의 과잉 유동성이 해소돼 값이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상품값 급락은 돈이 급한 헤지펀드 등이 이익 실현과 현금 확보를 겸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생긴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줄어들지 몰라도 신용경색에 대한 위기감은 더 커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6년 7월 처음으로 미국의 경기침체를 예상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제시한 ‘미국 경제와 금융의 12단계 붕괴 시나리오’가 있다. 주택시장 침체가 신용카드와 할부금융 부실, 채권보증업체 부도를 부르는 초기 단계는 그대로 진행됐다. 다음 단계인 상업용 부동산시장 붕괴, 은행 파산 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나리오의 마지막은 기업 연쇄 부도, 주가 급락, 유동성 고갈, 자산 헐값 매각의 악순환이다. 요약하면 부채위기가 신용위기로 발전하면서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를 차단하려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분명해 보인다. 물가보다 경기를 선택했고, 금리 인하에 이어 유동성 지원이라는 최후의 카드도 불사할 태세다. 베어스턴스 사태에 발 빠르게 개입하며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는 어떻게든 막겠다는 신호도 내보냈다.

문제는 FRB의 의지와 시장의 불확실성 중 어느 쪽이 이길지 속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용경색의 향방은 아직 예측불허다. 불규칙하게 공기 속을 떠도는 안개 입자처럼 말이다. 방향이 잡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럴 땐 안전이 제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신호등을 잘 살펴야 한다. 투자 속도를 반으로 줄이는 감속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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