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형 생체시계’ 토막잠으로 따라잡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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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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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들어서며 청와대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긴 A씨. 40대인 그가 처음 부닥친 어려움은 생소한 업무가 아닌 수면 부족이었다. 늦은 퇴근으로 취침 시간이 자정을 넘기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예전과 달리 오전 6시 이전에 일어나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평소 8~9시간 잠을 자던 그에게 그만한 고역이 없었던 것.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나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느낌이다. 낮에 토막잠을 자는 것 말고는 특별한 ‘처방’이 없었는데도 이젠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새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놀랍기만 하다.

요즘 ‘청와대 시계’가 관심거리다. 아침형인 데다 하루 수면 시간이 4시간 정도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계’에 공직자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바뀐 생체리듬은 수면 부족을 부르고, 이로 인한 피로감은 건강의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생체리듬대로 살기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시계’ 다르다

하루에 몇 시간 자는 것이 좋을까. 나폴레옹은 3시간, 에디슨은 4시간인 반면 아인슈타인은 매일 10시간 이상 잔 것으로 전해진다.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8시간을 자라고 하지만 근거는 없다. 8시간 수면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수학 문제를 더 잘 푼다거나, 암 발생 비율이 줄었다는 논문은 있다. 그렇다고 하루 평균 5시간 자는 사람의 건강이 나쁘다거나 수명이 짧다는 논문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수면은 계속 줄고 있다. 성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1950년대 8시간30분에서 2000년대엔 6시간30분으로 무려 2시간이 줄었다. 그럼에도 평균 수명은 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뇌가 웬만한 수면 부족은 잘 견딜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방어를 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것이 ‘플래시 수면’이다. 오랜 시간 잠을 못 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깜박 조는 것이다. 이때도 뇌는 휴식을 취한다.

적게 자도 건강할 수 있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 죽어도 일찍 못 일어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해외에 나가면 시차 적응을 잘 한다. 수면 부족은 일시적인 수면리듬의 혼란 때문이다. 또 이처럼 수면리듬이 망가질 때 건강도 악화된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생체시계를 수정해 몸이 적응하도록 돕는다. 문제는 교대 근무자처럼 수면 시간대가 불규칙한 사람들이다. 수면의 양이 아니라 수면의 질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잠을 자면 뇌가 방법을 찾아낸다. 숙면으로 잠의 효율성을 높인다. 주변에 5시간 잔다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라. 그가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생체시계를 바꾸려면 아침 기상 시간이 일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 햇살로 뇌의 송과체를 자극한다.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량이 조절되면서 시차가 극복된다.

밀린 잠 주말에 보충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은 미국의 랜드 가드너라는 청년이다. 1965년 그는 264시간12분을 자지 않고 버텨 이전 세계기록을 깼다. 연구자들은 그가 11일이나 수면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이후 며칠은 잠을 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고작 14시간40분만을 잤을 뿐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학교를 다니고, TV 인터뷰를 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밀렸던 잠을 억지로 몰아 자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예다.

그날 쌓인 뇌의 피로는 당일 수면으로 풀어 줘야 한다. 주중에 잠을 덜 잤더라도 주말에는 정상적인 수면 시간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족한 잠을 채우겠다고 늦잠을 자면 오히려 생체리듬이 깨져 수면리듬이 파괴되고 그 결과 다음날 더 피곤할 수 있다.

토막잠은 30분 이내로

수면리듬은 하루 24시간을 지배하는 ‘서캐디언 리듬’이 지배한다. 여기에 12시간이 주기인 ‘세미 서캐디언 리듬’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체리듬에 따른 깊은 수면은 오전 2시쯤 이뤄진다. 이때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쏟아져 나오면서 숙면에 이른다. 세미 서캐디언 리듬은 기상한 후 7∼8시간 이후 나타난다. 그래서 오후 2시쯤 점심식사를 하고 나른해지면서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때 30분 이내의 짧은 잠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좋은 대안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교실 사라메드닉 박사는 30분의 낮잠이 오후부터 떨어지는 기억력을 다시 높여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억지로 잠을 쫓는 것보다는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뇌를 재충전해 오후의 업무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의자에 기대 자면 효과

토막잠을 30분 이상 자는 것은 금물이다. 호주의 연구팀에 의하면 10분간의 짧은 낮잠이 20~30분 자는 것보다 업무 능률을 더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 깊은 잠인 렘수면 상태로 이어지면 깨어나서도 몸과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렘수면은 안정과 휴식을 취하게 하는 부교감신경이 지배한다. 혈압과 맥박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낮잠이 길어져 렘수면 중에 잠을 깨면 한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짜증이 날 정도로 몸이 무겁다. 교감신경이 지배하는 비렘수면에서 깨어나야 몸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하다.

요령은 누운 자세보다는 의자에 기대 잠깐 눈을 붙이는 식으로 잠을 자라는 것. 불편한 자세가 깊은 잠을 방해한다.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카페인의 향은 긴장을 풀어 줘 잠으로 인도한다. 카페인은 몸에 흡수돼 약 30분이 지나야 각성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낮잠을 자기 직전에 마시면 깊은 수면에 이르기 전에 잠을 깬다.

도움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 한림대 성심병원 신경과 이주헌 교수
참고: 잠의 즐거움, 국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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