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 태풍’ 부산 민심은 “멀쩡한 사람 자르는 게 개혁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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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 의원(왼쪽에서 둘째)이 21일 부산 서구 충무동 새벽시장을 돌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4월 총선을 기다리는 부산의 유권자들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한나라당 후보와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 후보 간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 지역에서만 현역 의원 7명을 날려버린 한나라당 ‘공천 쓰나미’의 후유증이다. 공천 파동 이후 부산은 재기를 노리는 친박(親 박근혜) 의원들의 근거지로 변해 있었다. 김무성(남을)·유기준(서)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엄호성(사하갑) 의원은 ‘친박연대’ 후보로 나섰다. 이들은 ‘한나라당’ 명찰을 반납한 채 부산을 친박 돌풍의 진원지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핵심엔 친박 의원들의 좌장으로 불리는 김무성 의원이 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그는 여론조사(중앙일보 20일 조사)에서 상대 한나라당 정태윤 후보를 20% 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여론조사대로 그는 부산에서 친박 무소속 돌풍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훌쩍 앞서있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21일 만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 사람(김 의원) 당선될 낍니다. 어데 인물이 빠집니까. 이재오 그 양반이 지 살라꼬 짤랐다 아입니까.” 남구 용호동에서 운수업을 하는 이인호(51)씨의 말이다. 이씨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과 상관 없이 이뤄진 공천은 말짱 헛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양일(69)씨도 “멀쩡하게 일 잘하는 사람 자르는 게 개혁 공천이냐”고 거들었다. 그러나 택시를 모는 최홍덕(63)씨의 생각은 달랐다. 최씨는 “원캉(워낙) 오래 해묵었으니 인제 고만해야 안 되겠능교”라며 “물갈이는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막상 투표 날엔 부산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남구와 인접한 수영구 주민들은 어떨까. 이곳은 이명박 대통령의 책사인 박형준 의원의 지역구다. 수영로터리에서 만난 박형자(48·여)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한 10년쯤 해묵었으면 그만해야 되는 거 아입니까”라며 “이왕 이명박 밀었으면 잘하도록 해줘야지, 탈당해서 출마하는 건 뭐 하는 짓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배선우(50)씨도 “무소속으로 당선돼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더라도 시끄럽기만 할 것”이라며 친박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20~30대 젊은층에선 통합민주당을 선택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부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연고지다. 해운회사에 다니는 김재화(29)씨는 “한나라당 공천 과정을 보면서 친이-친박 싸움에 질렸다”며 “한나라당 출신끼리 싸우는 통에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동료가 많다”고 전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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