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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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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 같다. 숱하게 지나가는 만남들이 부서지는 파도같이 아쉽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워지지 않는 굵은 물줄기를 그리면서 수평선 끝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예쁜 눈과 웃는 얼굴의 초등학생으로 만났던 여인을 일생 그리워했지만 딱 세 번의 만남으로 족해야 했던, 아쉬운 인연에 쓰린 가슴을 묻고 사는 수필가처럼 아름답게 부서진 만남이 우리 인생에도 곧잘 있다. 이름난 화가 한 분은 중학교 때 열성적인 미술 선생님께 매주 한 장씩 그려내곤 “잘했다”고 칭찬받던 ‘풍경화’의 즐거운 인연으로 이때껏 아름다운 풍경 속을 떠나지 못하고 있노라 한다. 아름답기도, 보잘것없기도 하지만 소중한 인연은 우리 인생에 새로운 빛깔로 나타나 남다른 의미를 전해 주기 때문에 되새길수록 맛이 나는 것 같다.

내게도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 꽤 여럿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음악’과의 인연을 첫 번째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음악과의 만남은 지극히 일상적으로 시작되었다. 담 너머 어떤 세상이 있을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전에 이미 집안 가득히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졌고, 신선한 공기처럼, 하루 세 끼 밥먹고 학교 가던 것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만났던 것이다. 따라 흥얼거리면서 그 속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흉내내고 그들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막연한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정말 하루 세 끼 밥처럼 한 끼도 거를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내게 남아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일 주일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한 날, 아홉 살의 다 늦은 나이에 피아노로 무료한 날들을 채우고 있을 때 외할머니가 찬송가 멜로디를 가르쳐 주던 기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워낙 늦은 만남이었고, 워낙 아름다운 것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담 너머 세상을 구경했을 땐 이미 웬만한 것에는 매력을 못 느껴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난 ‘음악’이 끌고 가는 숱한 인연에 시달려야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경쟁을 치르고 칭찬과 박수 속에 미움과 질투를 만나야 했고, 황량한 거리에서 이름 모를 공허를 배우기도 했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 속에 좌절의 눈물로 몇 날 며칠 햇빛을 바라볼 수 없던 날도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바흐와 베토벤을 만나 벅찬 가슴에 잠 못 이룬 날들의 감격과,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푹 파묻혀 있던 날들의 행복은 아무리 되새겨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어떤 인연도 필요치 않다고 감히 소리치면서 이때까지 내 삶을 지탱하게 해주고 있다.

연주 생활이 계속되면서 매번 무대에서 만나는 청중과의 인연이 소중하다고 느낀 것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부터였다. 어린 시절엔 잘 가꾸어 낸 내 음악을 많은 관중에게 보란 듯 자랑하는 게 연주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연주를 찾아와 주고 내가 전하고 싶은 음악세계를 찾아 감동을 나눠주는 청중과의 만남은 단 한 번이 되더라도 때마다 소중하고 의미있는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인연들에 가슴 설레고 있다. 외롭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소리’로 주고받는 영혼의 대화가 계속되면서 내 음악의 아름다움과 내가 그려내는 삶의 세계에 서서히 다가와 뜨거운 마음으로 물결지어 내게 전해질 때, 나는 놓칠 수 없는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힘들어 손을 내리고 싶을 때마다 바다와 같이 넓고 푸근한 바흐의 미소가 내 연약함을 안아주었고, 뼈를 깎아내린 듯, 피를 토한 듯, 가히 신의 솜씨라 할 만한 완벽한 구조물을 이루어 낸 베토벤의 초인적 세계가 나를 채찍질해 주었다. 무한히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선율과 쇼팽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내 가슴을 붉게 물들이면서 나는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앞세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본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