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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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의 한 서커스단에 새디라는 이름의 귀여운 새끼 암코끼리가 있었다.이 코끼리는 곡예를 배우는데 매우 힘들어하다가 하루는 조련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자 그만 울타리를 뛰쳐나가고 말았다.조련사가 다시 잡아다가 매질을 하자 어린 코 끼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눈물을 보고 깜짝 놀란 조련사가 코끼리를 뜨겁게 끌어안아 주었는데 그 뒤로는 이 코끼리가 매를 맞는 일도 없었고 훈련도 어느 코끼리 못지않게 잘 받아 훌륭한 서커스 코끼리가 되었다.』 미국 동물학자인 제프리 메이슨과 수전 매카시가 쓴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원제 When Elephants Weep.Delacorte刊)에 인용된 이 일화는 동물들도 결코 인간에 뒤지지 않은 슬픔.애정.우정등의 감정을 지니고 있 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찰스 다윈이 1873년 동물도 감정을 느낀다는 논조의 『동물과 인간의 감정표현』을 발표한 이래로 동물의 감정유무는 동물애호가들과 과학자들간에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최근 들어서는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동물도 감정이 있다 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쪽이다.
풍부한 사례가 곁들여진 이 책은 그런 주장을 가장 설득력있게뒷받침하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들은 우리 인간들이 동물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했을 뿐이지 동물들도 두려움.질투.수치감.희망.사랑.분노,심지어 연민까지 느끼는 감정체계를 소유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이 내놓은 일화를 보면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다.케냐의 한 새끼 코끼리 보호소에는 밤마다 어미 코끼리들이 무참하게살륙당하던 악몽을 꾸는 새끼 코끼리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족관에서 묘기를 벌이던 한 돌고래는 묘기시간에 새가 날아와서 관중들의 시선을 빼앗아 가자 묘기를 중단하고 새를 노려 보았다. 그래도 새가 날아가지 않자 그 돌고래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물을 한입 가득 그 새를 향해 뿜었다고 한다.질투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토토라는 침팬지는 말라리아에 걸린 주인을 극진히 간호해 완쾌시킨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 침팬지는 키니네뿐만 아니라 물잔까지 가져다 주었고 주인이 잠에 떨어지면 주인의 구두까지 벗겨줬다고 전한다.
물론 동물들의 감정표현을 읽기 위해서는 그들의 몸짓에 관심을쏟아야 한다.친구를 여우한테 잃어버린 아도라는 거위의 보디 랭귀지를 읽어보자.
『아도는 여우한테 반쯤 뜯어먹힌채 둥우리에 걸쳐 있던 친구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눈에는 물기가 촉촉한 채.며칠동안 아도는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지냈다.무리중에서 아도가 누리던 지위도 형편없이 추락했다.다른 거위들의 공격을 막아줄 방패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발에 가시가 박힌 여우의 경우도 재미있다.
그 여우를 돌보는 책임은 무리중의 암여우한테 떨어진다.이 암여우는 부상당한 여우가 완쾌돼 사냥능력을 되찾을 때까지 부양책임을 진다.이때 부상당한 여우의 감사 표현은 암여우를 비비고 하아주는 것으로 나타난다.저자들은 동물의 왕국에서도 영역이나 누가 더 잔인한가를 놓고 「전투」가 벌어진다고 주장한다.몽구스라는 동물은 힘의 과시로 자기들끼리 서로 물어 뜯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부상당하면 아무도 돌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
그것은 힘이 약하면 죽는 것도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또 오랑우탄.돌고래.물개.큰뿔양.야생마를 비롯,일부 조류에서는 강간행위까지 발견된다고 한다.
진흙구덩이에 빠진 어린 코뿔소의 케이스에서는 인간사회 이상의뜨거운 부모애와 교육면을 엿볼수 있다.
『새끼가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본 어미는 새끼 혼자 힘으로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가버린다.
다른 코뿔소가 허우적거리는 새끼 코뿔소를 끌어내려하자 어미 코뿔소가 재빨리 튀어나와 새끼를 도로 진흙구덩이에 내려놓도록 겁을 준다.그렇게 해서 결국 새끼 혼자 힘으로 빠져 나오도록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인간도 이 지구상의 거대한 동물 가족의 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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