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수영화산책>다이하드3-주연보다 조연이 돋보이는 활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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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이 그동안 세계의 부를 독식해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가 많이 생겼다.우리는 그러한 미국을 응징하고 세계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의 금괴를 전량 몰수해 대서양에 수장하겠다.』 FRB 지하금고에서 9천억달러어치의 금괴를 털어 선적까지 끝낸 범죄조직 두목이 남긴 맹랑한 메시지다.마치 경제정의 구현의 선봉장이라도 된 듯한 말투인데 제법 고급스런 발상이다.
『다이하드』시리즈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활극 재미만 무성한 청소년 취향의 오락물이다.이런 영화를 놓고 잘됐느니 못됐느니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다.단골 주인공인 브루스 윌리스가 펼치는 멍청한 경관의 익살스런 액션에 두시간 웃고 즐기는 것으로 족한 영화일 뿐이다.은행털이는 범죄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은행강도는 처음이다.당분간 이 기록을 깨기는 어려울 것같은데 최첨단 굴착장비로 세계 최대 은행의 철벽을 뚫는 장면이 장관이다.경 찰을 갖고 놀듯 하는 두목의 술수 역시 고도로 지능적이다.
이 영화에서 그런대로 의미를 찾을 것이 있다면 시민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찰상이라 할 것이다.악당들이 시민 목숨을 담보로 악행을 저지르는 소재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그에 맞서 시민을 지키는 경찰의 공복정신은 비록 영화라해도 의미가 새롭다.
폭약전문가인 악당이 폭파지점으로 삼은 장소는 지하철.공원.학교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이 세곳중 경찰의 활약이 가장 눈부신 곳은 학교인데 목숨을 건 구조행동은 어린이 보호에 각별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잔인한 범인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미화시킨 것도 미국영화다운 일면이다.경찰을 골탕먹이는 범인의 천재적 수완이 영화의 재미를더해주고 있으나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까지 가미한 것은 좀 짓궂어 보인다.그가 내뱉는 말마디마다 언어의 미학이 번뜩이는데 폭탄테러범의 이지적 언행이 멋있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그 결과로경찰관 주인공은 최후의 승자이면서도 별볼일 없는 들러리처럼 돼버리는데 조연을 위해 주연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영화적 기법으로 생겨난 모양이다.
편집담당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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