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경제적 이념성향 여야 공천에 별 영향 못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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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의 경제적 이념 성향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양당은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물갈이 경쟁을 펼쳤지만 정당의 정책적 정체성으로 귀결될 후보들의 정책적 판단과 이념적 성향 등은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한나라당 현역 의원 중 공천에서 탈락한 45명은 대부분 자유시장에 대한 신뢰가 높은 100위권 이상에서 나왔다. 이경재(4위)·김태환(5위)·송영선(8위)·김영숙(10위) 의원 등 30위권 이내가 10명에 이른 반면 전체 평균 순위인 143위 이하는 4명뿐이었다. 정진석(147위)·고조흥(148위)·박종근(155위)·김양수(158위) 의원 정도다.

한나라당 내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을 인정해 온 축에 든 이재오(169위)·원희룡(172위)·홍문표(175위)·김형오(201위) 의원 등은 공천 파동을 무난히 넘겼다.

한나라당이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을 강조해 온 만큼 의외의 결과가 나온 의원들은 당혹해 했다. 김형오 의원은 “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인데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국가 경제는 시장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체 1위에 올라 가장 시장친화적인 의원으로 기록된 박찬숙 의원은 “평소의 경제 이념 성향이 제대로 반영된 것 같다” 고 말했다.

도덕성과 의정활동 평가 등 비교적 객관적 기준을 적용했다고 평가받은 민주당의 공천 결과도 의원들의 경제적 이념 성향과 무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장 만능주의에 반대하는 당의 정책노선은 평가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했다. 23명의 공천 탈락자는 200위권 이내의 중도그룹보다는 정부 개입에 적극적이었던 200위권 이하에서 많이 나왔다. 이상민(234위)·정동채(256위)·김태홍(258위)·이원영(275위) 의원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일괄 배제 기준, 의정활동의 충실성 등을 반영해 배제 대상을 걸러냈지만 최종 후보자 선택은 당선 가능성과 여론조사에 의존한 결과다.

NSI 양수길 원장은 “정당 간 물갈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고령자나 다선 의원을 배제하는 등의 기준은 정당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원칙 없는 물갈이보다는 정책 성향을 바탕으로 한 ‘물 거르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공천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이뤄졌다”며 “18대 국회에서도 한나라당은 자유시장을 추구하는 당의 이념에 따른 경제 정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법 등 경제 현안과 사회 관련 법안 등의 입장을 보면 양당의 정체성 차이는 분명하다”며 “다만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이견 조정 과정을 거쳐 처리한 민생 관련 법안의 표결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장혁·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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