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굶주린 아이가 제 아들로 보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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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차인표씨<사진上>. [뉴시스]
''크로싱''에서 부자 역을 맡은 차인표<右>씨와 신명철군<사진下>.

“영화 속의 아들 준이가 11살입니다. 실제 제 자식인 큰아들 정민이도 11살입니다. 준이가 처한 환경에 가슴이 아플 때마다 제 아들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됐는지, 아닌지는 관객들이 판단하시겠지요. 다만 그 아이들의 고통을 이 세상 어디서든 알고 있다는, 그래서 도와주려 한다는 희망의 메지시가 전해졌으면 합니다.”

배우 차인표(41)씨가 18일 영화 ‘크로싱’(감독 김태균)의 제작보고회에서 절절한 부성애의 탈북자 아버지 역을 연기한 소감을 밝혔다. ‘크로싱’은 병든 아내의 약을 구하려 중국으로 건너갔다 탈북자가 된 주인공 용수(차인표)가 그 뒤 떠돌이가 된 어린 아들 준이(신명철)를 만나기 위해 몽골에 이르는 이야기다.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2006년)도 탈북자의 남한생활을 다뤘지만, 탈북과정에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추기는 ‘크로싱’이 처음이다. 민감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지난 4년간의 제작과정을 비밀에 부쳐왔다. 제작진 가운데 탈북자 출신들의 신변보호와 정치적 오해 등 여러가지를 감안해서다.

차씨는 “처음에는 출연 요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김태균 감독님과 데뷔 초부터 14년쯤 알고 지냈는데, 한번도 같이 영화를 한 적은 없었어요. ‘화산고’나 ‘늑대의 유혹’같은 (오락)영화는 다른 배우들이랑 했으면서, 이런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영화는 왜 나랑 하자고 할까 섭섭했지요. 탈북자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관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그의 마음을 바꿔놓은 것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발견한, 야윌 대로 야윈 채 굶어죽은 북한 소년의 사진이었다.

“이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뭘 했나, 2000만명이 넘는 (북한)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는 뭘 했나 싶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미약하나마 내가 할 수 있을 일이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각종 기부·봉사활동에 열심인 생활인이자 도시적 이미지, 특히 ‘몸짱’으로 알려져온 그는 이 날 공개된 예고편 동영상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운동을 중단해 근육을 줄였고, 체중도 4㎏을 감량했다.

“몽골에 촬영장소를 물색하러 갔다가 갑자기 심하게 앓느라 사흘을 내리 굶었습니다. 뭐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선택한 일은 아닌데, 인물에 빠져드는 데 도움이 된 경험이었습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아역연기자는 충북 영동 출신의 신명철(12)군이다. 600대1의 오디션을 거쳐 선발됐다. 차씨는 신군에 대해 “하루 세 마디나 할까 싶은 과묵한 성격인데, 촬영만 시작하면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차씨는 영화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총선에 출마하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인 관심은 전혀 없습니다.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미 촬영을 마친 ‘크로싱’은 상반기 중 개봉할 예정이다. 이날 제작보고회에는 해외 언론들도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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