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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활화산’인순이 연민은 없다 … 또 변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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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인순이(본명 김인순·51)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78년 여성 3인조 희자매 멤버로 ‘실버들’을 들고나온 게 가수인생의 시작이었다.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때문에 늘 ‘혼혈’이라는 편견이 따라붙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가 데뷔할 때만 해도 혼혈은 ‘낙인’과 같았다. 하지만 인순이는 ‘버려지고 찢긴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또 그 꿈을 믿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우뚝 섰다. 많은 이를 감동시킨 ‘거위의 꿈’은 그의 삶 자체였다. 13일 서울 도곡동 사무실에서 인순이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거듭나게 만든 노래로 조PD와 함께 부른 ‘친구여’를 꼽았다. ‘거위의 꿈’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 이름 뒤에 연민과 동정이 따라붙는 게 싫다. 화려하고 열정적인 인순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순이가 다음달 3, 4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데뷔 30주년 전국 투어(총 20여 회)에 나선다. 5월 15일에는 대중가수 최초의 금강산 공연도 예정돼 있다. 이번 투어와 함께 4년 만에 내놓을 정규앨범의 타이틀은 ‘레전드(전설)’다.

-스스로를 전설이라고 생각하나.

“외국 가수들의 공연에 ‘레전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 부러웠다. 지금 내가 전설이라는 게 아니다. 전설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아직 모자란 게 많다. 인순이에게 또 다른 꿈과 길을 제시해주는 타이틀이다 .”

-인순이 하면 인간승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 아직도 혼혈의 설움을 극복한 가수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 뒤에 항상 연민과 동정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것을 넘어서고 싶다. 역동적이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가수인데, 인간 승리의 이미지가 자꾸 그걸 짓누른다. 날 있는 그대로 화려하게 봐달라. 그래야 내 안의 화려하고, 가끔은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 미모의 가수, 정열의 가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웃음)

-최근 ‘인순이는 예쁘다’는 드라마가 화제였다.

“김현주가 ‘거위의 꿈’ 1절을 다 부르는 게 아주 좋았다. 처음에는 왜 내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냥 드라마더라. 난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사랑한다. 내 미소는 100만 불짜리다. 넉넉한 복코도 마음에 든다. 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난 예쁘다.”

-‘거위의 꿈’이 큰 감동을 줬다.

“느린 노래를 거의 안 불렀었다. 안 그래도 슬픈 배경이 있는데, 노래까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년 전 콘서트 마무리 곡으로 쓰려고 ‘거위의 꿈’을 찾아내 방송에서 한번 불렀는데, 대박이 났다. 후배 가수나 관객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얘기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얘기했다. 그것이 화제가 돼서 사람들이 ‘거위의 꿈’을 부르는 인순이를 자꾸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싱글 앨범으로 내놓았다.”

-왜 반향이 컸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 취업·진학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꿈을 포기해야 될 상황에 놓인 40, 50대가 노래를 들으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 인순이는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박수를 쳐주셨고, ‘나도 인순이처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친구여’는 ‘결코 늙지 않는’ 인순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라는 곡 이전에는 패티 김 선배처럼 대형 가수가 되고 싶었다. 프로듀서 박진영이 그 방향을 틀어놨다. ‘또’라는 노래로 인순이 안에 있던 알앤비와 솔 감각을 끄집어냈다. 그게 도화선이 됐다. 이후 후배들 노래에 관심을 가졌고, 조PD와 ‘친구여’를 불렀다. 솔의 느낌이 더 강한 노래였다. 작곡가 박근태가 나를 또 한번 재발견해준 것이다. 원래는 녹음만 하려 했다. 그런데 방송 몇 번 해보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노래가 젊은데 내 나이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핫팬티·탱크톱도 입고 머리도 부풀렸다. 조PD와 20살 차이가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노래했다. 내가 고집을 부리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없다. 나를 이끄는 사람이 젊은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이번 앨범도 젊은 작곡가(이현승)와 작업하고 있다.”

-‘열린 음악회’가 디바 인순이를 각인시켰다.

“80년대 후반부터 6, 7년간 슬럼프가 있었다. 대학가요제 출신 등 아카데믹한 배경의 가수들에게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던 때였다. TV를 꼼꼼히 모니터했다. ‘내가 나가면 이렇게 할 텐데’라며 무대를 구상했다. ‘열린 음악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기회가 주어져 ‘라밤바’ ‘님은 먼 곳에’ 등을 부르고 들어가는데 거센 앙코르 요청에 사회자까지 당황할 정도였다. 더 이상 부를 악보가 없어 무반주로 ‘사설 난봉가’ ‘창부 타령’을 불렀는데, 그게 또 대박이 났다. 그후 ‘열린 음악회’에 격주로 나갔다. 행운이었다. 레퍼토리가 고갈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며 10년 이상을 끌었다. ‘열린 음악회’에서 트로트를 처음 부른 가수도 나였다. ‘열린 음악회’는 슬럼프에 빠진 인순이를 일으켜 세워줬다. 무대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됐다.”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일품이다.

“아저씨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시큰둥하게 공연을 본다. 그런데 나중에는 여성들보다 먼저 일어나 춤을 춘다. 나도 관객도 함께 춤추고 놀면서 정신을 잃는 것 같다. 무대에 오를 때 뭔가 ‘훅’하고 내 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낀 적이 있다. 움찔할 정도였다. 그게 ‘기’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기를 받아서 그걸 노래로 돌려드린다. 인순이를 보며 에너지가 솟도록 해드리고 싶다.”

-최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12일 부시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했다. 자리에 초청받은 유일한 가수였다. 살짝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됐으나 양국 어르신들로부터 ‘역시 인순이야’라는 칭찬을 들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한국의 국민가수라는 말을 들었다.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예전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한국인들이 당신을 아주 사랑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내 인생을 선택했다. 엄마와 살면서 이 땅에 뼈를 묻겠다고 했다. 환경을 피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쳐보고 싶었다. 그런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내 운명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 콘서트에서 보여줄 것은.

“패션만큼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다. ‘실버들’이란 트로트곡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트로트 무대로 시작하지 않을까. 팬층이 넓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올드(old)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영(young)하지만 주책 맞지 않게. 그리고 도전은 확실히 해야 한다. 그게 대중이 내게 원하는 거다. 참으로 어렵다. 어쩌겠나. 내 스스로 선택한 굴레인 것을.” 

글=정현목 기자, 사진=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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