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월요인터뷰

“MB 정부, 6·15선언 부정하면 남북관계 힘들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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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가 최근 평양의 분위기와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만난 사람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지난주 평양을 다녀온 박한식(68) 미국 조지아대 석좌교수는 걱정이 많았다. 지난 10년의 남북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자칫 국내 여론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곁들였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아직까지 북한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북한 내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미국 내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꼽힌다. 그에게서 최근 평양의 분위기와 향후 남북 관계 전망을 들어봤다.

- 이번이 몇번째 방문이신가요.

“마흔 번이 넘었습니다. 이번에는 농업, 특히 축산 분야 연구의 선두 주자인 미국 조지아대와 북한의 농업과학원의 교류를 논의하기 위해 방문했지요.”

-대동강변도 이제 봄이던가요.

“ 날씨가 제법 쌀쌀했어요”

-북한은 출범 후 20일이 지난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기대 반 우려 반, 그런 겁니까.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기대나 우려보다는 초연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북한은 6·15선언 이행 의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나 연방제와 같은 통일방안은 상징적인 부분이고 현실적으로는 체제와 이념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게 그들 생각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을 묵살한다면 좋은 남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부가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북한의 핵 포기를 대북 지원의 조건으로 강조하고 개혁·개방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명박 정부가 6·15선언을 부정하는 것으로 본다는 겁니까.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자연인 김대중과 노무현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선언서에 합의하고 서명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적 비전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면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요. 통일·남북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어요. 6·15선언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선 이런 데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57만 표 차로 당선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 표의 큰 차이로 당선됐어요.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약화된 한·미 관계의 바탕에서 대북정책을 폈지만 이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대폭 복원·강화하면서 대북정책을 펴려고 합니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이명박 정부를 만만히 볼 수는 없을 텐데요.

“남쪽에서 진보적인 정책이 나올 때는 북한이 협력도 많이 하곤 했지만 남쪽 정권이 바뀌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경제 대국을 만들겠다는 데 총력을 쏟고 있어요. 과거에는 사상과 이념과 국론을 통합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경제 재건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경제를 재건하려면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데요.

“그러니까 남한과의 협력이 어렵다면 중국·유럽 등과 경제외교를 하겠다는 거죠. 지금까지는 대북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해 보면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인 시각,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할 것이기 때문에 남북협력기금을 없애거나 삭감하면 대북 투자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협력이 가능한 나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겠죠. 김정일 위원장이 1일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그건 산보하러 간 게 아닙니다.”

- 이명박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김 위원장을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말했는데….

“현재로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 같아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개인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는 비핵·개방·3000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거기에 북한은 상당히 자존심을 상해하더군요. 북한이 주권국가로 나름대로의 노선과 이념이 있는데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그런 방안을 덜컥 제시한 게 비현실적인 것이란 얘기죠. 숫자는 구체적이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됩니다.”

-문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입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핵 폐기가 대북 지원의 선결조건입니다.

“그런 논리는 조지 W 부시 정부와 큰 차이가 없어요. 부시 행정부도 초기에 비해 태도가 바뀌었어요. 북한 사람들은 주권과 생존권을 돈을 받고 팔아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핵을 포기해야 경제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체제 보장과 북·미 관계 같은 경제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겁니다.”

-북한은 미국의 대선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요.

“북한도 외신과 각종 여론조사를 보고 민주당의 집권을 예상하고 있지요. 후보별 한반도 정책에 대한 관심이 상당해요. 힐러리 후보는 북한이 개혁·개방·인권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한 반면 오바마 후보는 인권과 핵 문제의 진전을 위해 조건 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한 걸로 미뤄 보다 진보적으로 봐야죠. 그러니 북한 입장에서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기대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북한이 지난달 뉴욕 필 공연을 생중계한 건 주민들에게 문화적 충격이었을 텐데 지도부가 결심한 배경은 뭔가요.

“국민 정서가 동요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겠죠. 북한 주민들은 미국 국가 연주에는 흥미가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세계적인 뉴욕 필하모닉이 북한 국가를 연주하는 걸 보고 나름대로의 긍지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국내외에 편집하지 않고 생방송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고 지도부가 판단했을 겁니다.”

-뉴욕 필 공연이 길을 튼 싱송 외교의 후속이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북한 측의 답방 공연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북한의 북·미 관계 개선 의지는 미국보다 더 강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니 북한은 대미 민간 외교 활동을 활성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국립교향악단이 뉴욕에 가서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연주한다면 또 다른 주목거리가 될 겁니다.”

-북핵의 교착상태가 걸림돌 아닌가요.

“사실 그게 문제입니다. 현재는 북한의 핵 포기를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내 보수세력들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겁니다.”

-거두절미하고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핵 해결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올려야 해요. 이란이나 알카에다 문제가 진전이 없으니 북한 핵 문제 해결이 더욱 절실해요. 북한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북·미 관계 개선, 평화협정 체결,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 등 조건이 맞으면 핵을 포기할 겁니다. 체제 안전의 문제가 해결되면 핵을 투명한 방식으로 포기할 수 있을 겁니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 때 북한이 CNN과 ABC 기자들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해 미국에서 톱뉴스로 다뤄졌어요. 영변을 개방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영변 시설은 완전히 파괴할 용의가 있음을 보인 거죠.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 잠재능력을 갖췄으니까 핵시설은 투명한 방법으로 포기할 입장에 있어요. 안보에 대한 입장도 과거엔 ‘안보를 누가 해 줘, 우리가 해야지’에서 ‘안보를 누가 해 줄 수는 없지만 안보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조성시킬 수 있다’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큰 변화죠.”

-그게 6자회담의 성과인가요, 북한 내부의 변화인가요.

“6자회담의 성과라기보다 핵 협상 지렛대가 무제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당장 일본이 핵을 가지면 협상력은 떨어지죠.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고요. 지금까지 경제가 어려워도 고생하면서 개발했으니 쉽게 포기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건과 북·미 관계 개선의 돌파구 마련에 따라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어떤 대북정책을 권고하고 싶습니까.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강할 겁니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잃어버린 10년으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냉전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사들을 기용해 대북정책을 편다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에 커다란 물꼬가 터졌죠.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과거로 회귀할 생각이라면 상당한 저항과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공식적인 트랙과 북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 비공식 트랙을 동시에 사용해야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대치 상태에 있는 공식 트랙을 보완해 줄 장치가 필요한 것이죠.”

정리=정용수 기자 , 사진=변선구 기자

◇박한식 교수=북·미 관계에 정통한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 석좌교수. 2004년 11월 북한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트랙Ⅱ 대화’를 개최하는 등 4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북·미 간 가교 역할을 했다. 현재 조지아대 부설 세계문화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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