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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장사 천상배씨의 자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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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무와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시는 어머니를 닮은 나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고향 땅 뒷동산을 주말이면 어김없이 내려가 가꾼다.

유년의 추억들이 살아숨쉬는 생가 뒷산에는 할아버지가 심은 100년 이상 된 대추나무, 불밤나무 고목이 아직도 끈질긴 잔명(殘命)을 이어가고 있고 리기다소나무, 적송, 후박나무, 오리나무, 엄나무, 산딸나무, 헛개나무, 진달래 등 50종이 넘는 교목과 관목이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내가 제일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도 실은 문화계·학계 인사들이 아니라 나무와 관련된 종사자들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정헌관 박사, 나무장사 천상배씨는 그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그 천상배씨가 최근 자신의 사업지인 경북 상주에서 나의 고향집을 세 번이나 찾아왔다. 재래종 밤이지만 크기가 신품종 밤처럼 크고 맛있는 우리집의 유별난 불밤나무 유전자를 보전해 자원화해 보겠다고 찾아온 것인데 이분의 주특기는 새로운 유전자원을 찾아내 우량 과수목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이미 그는 5~8년이면 수확이 가능한 금자탑 은행나무를 연구개발했고, 오디 뽕나무 재배조합을 만들어 식품가공·유통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순후한 웃음을 흘리는 영락없는 시골사람, 천상배씨와 이야기를 트기 시작하면 그가 어수룩한 농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국토의 70%인 산지를 식량자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 재앙으로 곡물 수확량이 급감하고 이에 식량 수출 국가들이 자국의 식량안보에 힘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식량자급률 29%인 우리나라의 미래는 이제 산림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지는 식량자원 생산과도 무관하고 조림의 경제성도 적다고 한다. 숲이 주는 간접효과의 중요성을 제외하면 생산성과는 많이 떨어지는 땅이라는 얘기다. 최근 정부가 펼치고 있는 수종 갱신 사업도 단순한 목재 생산에 국한돼 펼쳐지고 있어 너무 근시안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사업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개벌(開伐)방식보다는 택벌(擇伐)에 의한 효율적인 수종 갱신이 친환경적인데, 산림자원의 미래를 보는 철학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농약을 치지 않고도 생산이 가능한 산지적응 은행나무, 왕도토리나무 등 과수 수종을 섞어 심어나가야 합니다. 은행나무의 경우 먹거리 제공뿐 아니라 재목, 제약원료 생산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미래 식품 소비시장의 트렌드인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해 줄 수 있고, 본격적인 수확기에 들어가면 많은 수확을 하면서도 여러 해 수확이 가능해 생산비가 어떤 작물보다 적게 들어 자자손손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는 미래를 읽는 나무장사꾼답게 오디 생산용 뽕나무 재배로 산림자원의 식량화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가슴아프게도 지금 나의 고향 이웃집 마을 산에서는 집중호우 때 토사 유출이 우려될 만큼 수종 갱신을 위한 무자비한 산림벌채가 진행되고 있다. 43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동네 꼬마까지 동원돼 애써 심었던 리기다소나무, 참나무 숲을 모조리 도륙한 자리에 당시 송충이가 먹는다고 도태시킨 적송 등 목재용 나무를 되심고 있다. 산림행정이 주어진 예산 쓰기에 바쁜 나머지 생태계나 식량자원에 대한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실적 위주로 펼쳐지고 있다는 증거다.

새 정부는 식량자원 확보를 위해 지금 적극적인 자원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놀라 해외에 토지를 확보해 식량 전진기지를 설치한다는 방안까지 적극 모색 중이다.

“정부의 조림정책도 생태계와의 조화는 물론 목재 및 식량자원 확보를 위한 동시 전략으로 추진돼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산지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하는 나무장사 천상배씨의 멘토인 정헌관 박사가 곧 다가올 나무 심는 철을 앞두고 한 말이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