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발보다 머리가 바빴던 여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사색기행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588쪽, 2만1000원

일본의 만물박사 형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65.立花隆)는 소문난 독서광이지만 그 못지않은 여행광이기도 하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여행에서 실제 체험을 하면서) 이것은 뭘까, 하는 놀라움이 먼저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에 책을 읽고 사고하는 것"이다. 그는 "나의 잠재의식에는 세상살이란 애초에 떠도는 것이라는 의식이 깊이 묻혀 있다"고 털어놓을 만큼 여행을 즐겨 왔다. 오죽하면 2년마다 이사를 하고 직업 없이 이일 저일을 옮겨다녔을까. 그는'여기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고, '어제 같지 않은 내일'을 만나길 원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다치바나의 독서 기행이라면 이 책은 그에게 '존재의 근본을 만들어준' 여행기다. 대학 1학년 때 '유럽 반핵 무전여행'을 떠난 이후로 지구를 네 바퀴 돌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을 뒤져온 그는 취재하듯 다녔던 여행에서 발보다는 머리가 바빴다. 그래서 '사색(思索) 기행'이란 제목을 붙였다.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 몽골 개기일식 체험, 폭음 폭식 여행, 유럽 치즈 기행, 자폭 테러 연구 등 다치바나는 "일단은 뭐든지 다 입안에 던져 넣고 먹어 보자"는 탐험가의 정신으로 세상 곳곳에 뛰어든다. 현장을 격렬하게 몸으로 비벼보고 나서 그는 "이 세계를 정말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체의 여행이 필요하다"고 썼다.

비중 있게 다룬 '팔레스타인 보고'와 '뉴욕 연구'는 문명사의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특히 1987년 뉴욕 상황을 그린 'AIDS의 황야를 가다'는 '펜트하우스'에 실렸던 기사다. "긴 눈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에이즈 환자와 같다"는 다치바나의 신음과도 같은 한마디가 인생이 결국 종착역에 이르는 하나의 여행임을 말하고 있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