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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을 보세요, 키우던 개를 어떻게 버릴 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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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는 잘생겼다. 사고를 당해 버려진 놈을 데려왔다. 개 팔자도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자락에 살고 있는 조각가 강은엽씨의 아침식사 시간은 누구보다 길다. 오전 8시가 되면 함께 사는 아홉 아이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서둘러 음식과 물을 차에 싣고 동네 어귀에 흩어져 사는 30~40여 명의 다른 아이들을 만나러 나간다. 그의 ‘아이들’은 동네 멍멍이들이다. 그녀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식당 옆 공터에 사는 주몽이와 소서노도, 철물점 집 누렁이도 반가워 짖기 시작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배식’을 마치고 나면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훌쩍 지난다. “밥도 밥이지만 제가 나타나면 반색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하루도 이 일을 빼먹지 못해요.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엔 아이들이 혹시 떨고 있지 않을까 싶어, 담요 하나 더 챙겨 나가게 되죠.”

이미 10년째 하고 있는 이 일로 그에게는 ‘강아지 엄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1997년 청계산 인근으로 이사왔을 무렵, 동네 강아지 한 마리가 꽁꽁 얼어버린 밥통을 핥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차에 싣고 있던 사료를 덜어줬던 게 시작이었다.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동네 곳곳에 개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개가 사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고, 일부는 철창에 갇혀 식용으로 사육되고 있었어요.” ‘내 개니까 내 맘대로 키우겠다’는 사람들에게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개를 생명으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 ‘개에게도 물을 줘야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느꼈다.

아침마다 개들의 먹이통과 물통을 채워주고, 주인과 상의해 개 집을 새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개들의 건강을 돌보는 것은 물론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과 불임수술에도 앞장섰다. “주인들에게 ‘개들도 생명인데 잡아먹지 말고, 한두 마리만 예쁘게 키우자’고 설득했어요. 많은 분이 동의해 주셨고, 나중엔 음식과 물도 직접 챙겨주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www.withanimal.net)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1996년 당시 기르던 개를 치료하러 동물병원에 갔다가 병원 문 앞에 피투성이로 버려진 유기견 누룽지를 만나게 됐어요. 원래 개를 좋아하긴 했지만 버림받은 개 문제에 대해선 잘 몰랐었죠.” 누룽지를 데리고 온 뒤, 유기견 입양을 주선하던 카라(당시 아름품)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떴고, 회장 자리까지 맡게 됐다. 이듬해 마당이 넓은 청계동으로 집을 옮긴 뒤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기견을 여럿 입양했다. 현재 그의 집에서 기르고 있는 9마리의 개 중 5마리가 원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강아지들이다.

그가 누룽지를 만날 당시만 해도 버려지는 개의 수는 많지 않았다. 버려진 개도 카라 등의 단체를 통해 쉽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유기견은 1만 마리 정도였지만 2004년에는 3만7000마리까지 늘어났고 2006년에는 5만 마리를 넘어섰다. “사람들이 유행처럼 개를 샀다가 귀찮아하며 버리는 경우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거죠. 개를 버리는 경우는 정말 다양한데, 이사를 가면서 동네 수퍼 앞에 묶어놓고 가기도 하고, 남편 될 사람이 싫어한다며 결혼하기 전에 동네 뒷산에 몰래 갖다 버리기도 하죠.” 유기견들은 길거리를 헤매다 업자들에 의해 보신탕집·개소주집으로 팔려간다. 차에 치여 죽기도 한다. 운 좋게 구조돼 보호소에 오더라도 운명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동물보호소에 온 개들 중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5%가 채 안 돼요. 90% 이상이 안락사, 아니 ‘안락살해’를 당하는 거지요. 특히 올해 1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유기동물 보호기간을 30일에서 10일로 줄이면서 이들의 생명권이 더욱 심각하게 침해를 받게 됐어요.”

‘사람도 살기 힘든데 무슨 동물보호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버려진 강아지를 입양하고, 동네 개들까지 먹이는 그를 보고도 ‘돈이 많으니까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수군댄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보통 품질의 사료로 개 한 마리를 먹이는 데 드는 돈이 한 달에 6000~7000원 정도밖에 안 돼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죠.” 보다 많은 사람이 동물의 생명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해 겨울엔 ‘숨’이라는 동물보호 잡지를 창간했다. 박원순 변호사, 영화감독 임순례씨, 성악가 조수미씨 등 카라의 명예이사 및 5000여 명의 회원이 작은 정성을 보탰다. 책 속엔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쓴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것과 똑같은 것이지요. 개를 키우려면 개의 평균수명인 15년을 함께할 반려자를 맞는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버림받는 생명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요.”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강씨네 가족은…

누룽지(♀)

1996년생이니까 올해로 열세 살 됐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피투성이가 된 저를 누군가 동물병원 앞에 버려두고 갔다더군요. 당시 여러 번에 걸친 수술 때문에 지금도 다리를 절어요. 8명이나 되는 동생들에게 잘 해주려고 하는데 얘네들이 버릇 나빠질까 걱정이에요.

두부(♂)

2002년 4월에 태어나 두 달 만에 입양됐는데, 주인이 못 키우겠다며 저를 다시 동물보호소에 버렸대요. 처음 집에 오던 날, 내 몸에 붙은 벼룩과 진드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부끄러웠어요.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분들께 매일 아침 신문을 물어다 드리는 게 제 효도예요.

다랑이(♀)

사람들이 싫었어요. 저를 키우겠다고 데려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를 버렸거든요. 서너 집을 전전하다 2002년 10월 보호소를 통해 지금 가족을 만났어요. 처음엔 또 버림받을까봐 똥도 못누고, 구석에서 눈치만 봤죠. 이젠 안방 침대에서 네 발 쭉 펴고 잔답니다.

행운이(♀)

2004년 여름 길을 잃고 강남 성모병원 앞 차도를 비틀대며 건너다 주인집 언니에게 구출됐어요. 처음엔 털이 너무 더러워서 제가 백구인지 아무도 몰랐대요. 저를 집으로 데려와 목욕시켜 주고 “너무 하얗다”며 기뻐하던 언니를 평생 주인으로 섬기기로 다짐했죠.

슬기(♀)

2003년 초,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때 엄마가 아파 세상을 떠났는데 빈 집에서 멍하니 엄마를 기다리는 제가 안쓰러워 이리로 데려왔대요. 그런데 집은 너무 답답해서 낮에는 동네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밤에만 집에 들어와 자요. 말하자면 ‘하숙강아지’랄까요.

밤톨(♂)

전에 살던 집 할머니는 개고기를 좋아했대요. 같이 살던 형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번엔 내가 죽는가 보다’ 싶었는데 동물보호단체 누나가 기적처럼 나타나 저를 구해줬어요. 2005년 일이니까 이젠 잊을 때도 됐는데, 어려서부터 하도 굶어 그런지 아직 ‘식탐’을 버릴 수가 없네요.

헤니(♂)

2007년 9월 태어난 막내입니다. 지난 1월에 가족들을 만나 형·누나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죠. 특히 저는 두부형이 좋더라고요. 근데, 5개월 후엔 저를 입양하기로 한 주인을 따라 미국으로 가야 한대요. 미국 가서 형들 보고 싶어질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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