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스프링 뒤집었을 뿐인데 로열티 1억8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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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광구 박사가 일반 스프링과 뒤집은 스프링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 뒤집은 스프링은 짧게 당겨도 똑같은 힘을 낸다.

“특허나 과학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생활 주변만 잘 살펴도 대어를 건질 수 있지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능금속연구센터 지광구(51) 박사는 일상에서 찾은 과학적 발견으로 유명 학술지에 논문도 발표하고, 로열티도 받고 있다. 그의 업적 중에는 거창한 연구 장비나 거액의 연구비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오다가다 발에 차이는 것과 남들이 하는 일을 치밀하게 관찰해 그 결과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때문이다. 지 박사는 평범함에서 과학을 일구는 혜안이 있는 셈이다.

그는 시중에 흔한 스프링을 단순히 거꾸로 뒤집는 아이디어만으로 스프링의 힘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13일 업체에 기술이전을 하기로 했다. 로열티만 1억8000만원에 이른다. 거창한 연구 장비도, 새로운 재료를 개발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 간단하고, 어린 시절 한번쯤 장난 삼아 스프링을 뒤집어 보기도 하지만 지 박사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그런 원리를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지 박사는 지난해 이런 원리를 담은 연구논문을 학술지 ‘유러피언 머티리얼스’에 투고하자 심사위원이 ‘엉터리’라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곧바로 사진 등 실제 실험과정을 담은 영상을 다시 보내자 심사위원은 자신이 실수했다며 논문을 게재하겠다는 승낙서를 보내왔다.

스프링은 잡아 늘이면 늘일수록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는 수축력은 일정하게 커진다. 그러나 덜 잡아 늘였을 경우 그 힘은 크게 줄어든다. 스프링의 단점은 어떤 큰 힘의 수축력을 얻으려면 그 만큼 길게 늘여 당겨야 한다. 이 때문에 스프링이 쓰는 부품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공학자들은 약간만 당겨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재료나 탄성을 조절하는 것에서 찾았다. 지 박사는 그런 문제를 스프링을 거꾸로 뒤집는 아이디어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예를 들어 기존 스프링으로 10이라는 힘을 얻으려면 10㎝를 늘여 당겨야 했다고 치자. 지 박사는 10㎝를 늘인 상태에서 스프링을 거꾸로 뒤집은 뒤 오므라들게 한다. 그러면 스프링을 잡아 늘이지 않아도 오므라든 상태에서 10이라는 수축력을 갖는다. 스프링의 오므라든 상태에 10이라는 힘이 축적돼 거기에서부터 힘이 증가하는 셈이다. 이는 스프링을 늘여야 하는 공간도 필요 없고, 부품을 그만큼 작게 만들 수 있게 한다. 간단한 원리지만 그 용도는 다양하다는 게 지 박사의 설명이다.

스프링을 사용하는 치열 교정기의 경우 스프링의 힘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조여줘야 한다. 그러나 이 스프링을 쓰면 그럴 필요가 없다. 로봇 팔도 균일한 힘을 갖도록 할 수 있다.

지 박사는 철판에 나사가 헐겁게 조여졌을 경우 두들기는 소리가 작게 난다는 사실을 체계화해 특허를 냈다. 그는 아무것도 부착되지 않은 철판을 두들기면 큰 소리가 나지만 거기에 나사를 부착해 헐겁게 조여 놓으면 소리가 급속하게 작아지는 것을 관찰로 알아냈다. 나사를 꽉 조이면 두들기는 소리는 여전히 크게 난다. 실상 이런 현상도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연구해 특허를 출원했으며, 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기도 했다. 지 박사는 “도로 굴착기나 절단기 등 굉음을 내는 공구에 이 원리를 이용하면 소음 공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성과는 꼼꼼하게 일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큰 과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게 한다. 지 박사는 17년간 KIST에서 재료를 연구해 왔으며, 형상기억합금 개발 등 71편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17개의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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