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시시각각

감동과 실용의 쇼가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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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9년 7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직업훈련센터. 재선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젊은 흑인 훈련생과 나란히 섰다. 그러고는 운집한 청중과 몰려든 취재진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일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장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 장면은 감격에 찬 흑인 훈련생의 모습과 함께 TV 화면과 신문 지면을 통해 전국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클린턴은 이어 지역 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겨 민간 기업인들과 만났다. 기업 대표는 대통령을 옆에 세워두고 마이크 앞에 섰다. “젊은이들이 하이테크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800만 달러를 들여 정보기술 훈련원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 클린턴은 업계 대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갖게 하는 일은 정부나 산업계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하나된 미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환호와 함께 감동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이날 행사는 4일간 계속된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켄터키 탄광촌에서부터 미시시피 델타의 농촌, 세인트루이스 빈민가,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보호구역까지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빈곤지역 순방(poverty tour)’이다. 클린턴은 가는 곳마다 빈곤의 현장에서 지역민들의 손을 잡았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물론 지역 현실에 맞는 대책을 발표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것은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였다. 아니 대통령과 지역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한바탕 쇼였다. 클린턴과 참모들은 이 쇼를 위해 몇 달 동안 무대를 물색하고 대본을 짰다. 지역민들의 의견을 미리 들어 쇼에 현장감을 불어넣었다. 언론에 비칠 모습과 국민들의 반응까지 염두에 두고 치밀한 계획이 세워졌다. 쇼는 성공했다. 빈곤지역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빈곤 대책에 대한 의회의 동의도 끌어냈다. 클린턴 자신의 지지도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주말 서울 양재동 할인점과 자양동의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살피러 현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할인점에선 농수산물 유통 구조의 개선을 말했고, 재래시장에선 “(재래시장을) 고유의 문화 전통을 가미해 관광명소로 만드는 특색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전통시장으로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다.

대통령이 현장을 강조하자 장관들도 바빠졌다. 업무보고를 현장에서 직접 듣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느라 분주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승수 총리와 함께 재래시장을 방문한 데 이어 판교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철근 값이 올라 걱정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철근의 제조·유통 과정을 살펴 사재기를 끝까지 추적해 단속하고 부당이익에 대해 과세하라”고 현장에서 지시했다. 이 바람에 재정부와 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국세청은 부랴부랴 철근 매점매석에 대해 강도 높은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은 현장을 찾지 않았다. “공연히 쇼 하는 게 싫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숭례문 화재 현장에도 끝내 가지 않았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도 마지못해 며칠이 지나서야 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현장주의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민들의 눈에도 새 정부의 일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인다. 이래서 쇼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감동이 없다. 준비된 각본 없이 즉흥적인 애드리브만으로는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현장에서의 생동감은 있을지언정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 무대에서 바쁘게 뛰어다닌다고 쇼가 되는 게 아니다. 감동과 실용을 다 갖춘 쇼를 볼 수는 없을까.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