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특허 연장 꿈’ 법정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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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의 노바스크(고혈압 치료제)·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 사노피아벤티스의 플라빅스(혈전 치료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빅3’ 처방약이다. 흔히 ‘블록버스터 3인방’이라고 부른다.

이들 빅3를 둘러싸고 국내에선 다국적 제약사와 토종 제약사 간 법정다툼이 뜨겁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독점적으로 약을 팔 수 있는 특허 기간을 늘리려 안감힘을 써왔고, 토종 제약사들은 늘어난 특허 기간이 무효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토종업계는 특허기간이 끝나지 않은 외국산 신약의 독점 시장을 뚫으려고 오리지널 의약품을 약간 변형한 ‘개량 신약’으로 돌파구를 찾아 왔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실시된 약가 적정화 방안으로 개량 신약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서 토종 제약사들이 개량 신약을 만들기보다 다국적 기업의 원천특허를 조기에 무효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른바 ‘에버그린 전략’을 깨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다국적 회사들은 매년 수십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퍼부어 가며 신약을 개발하는 만큼 대박을 터뜨리는 몇몇 신약에 올인해 큰돈을 벌겠다는 계산이었다. 특허 독점권을 유지하려고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각국에서 특허 기간을 늘리는 데 주력한 것. 이것이 바로 에버그린 전략이다.

지난해 국내 의료시장에서 처방약 1위(1100억원)를 기록한 플라빅스의 경우 1983년 원천물질 특허를 출원한 이후 국내에는 88년에 약효를 내는 한 가지 물질만을 별도로 출원해 특허등록을 했다. 이로 인해 5년 정도의 특허 연장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동아제약 등 23개사가 특허 무효임을 특허청(1심)에 호소했고 특허청과 특허법원(2심) 모두 이 주장을 인정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화이자 노바스크의 경우 물질명인 ‘암로디핀 베실레이트’로 87년 특허를 출원했으나 그해 7월 국내에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암로디핀’이라는 원천물질로 새 특허를 받았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지난해 특허 기간이 만료됐지만 국내에선 뒤늦게 출원한 덕분에 특허 기간이 2010년까지 연장됐다. 안국약품 등이 특허무효를 주장해 법원 1심에서 패소했다가 지난해 2심에서 승소해 역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최종심이 있지만 최근 복제약이 시장에 나오면서 정부는 노바스크의 약가를 20% 정도 인하한 바 있다.

화이자의 리피토 역시 지난해에 특허권 만료 예정이었지만 90년 새로 출원한 내용으로 특허 기간을 연장한 경우다. 1심에서 무효가 인정됐고, 특허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세보특허법률사무소의 이동기 변리사는 “원천특허의 일부분을 떼내 특허 기간을 연장한 ‘에버그린 특허권’은 유럽과 미국에서도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는 값싼 복제약 출시를 가능케 해 약값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외국계 제약사 관계자는 “에버그린을 너무 무시할 경우 의약품 시장에 복제약이 범람하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재우 기자

◇블록버스터 의약품=전 세계적으로 연간 10억 달러(약 9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초대형 히트 의약품을 뜻한다. 블록버스터는 대박 영화를 의미하는 영화계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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