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색문화공간>5.美 시애틀 "모스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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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배꼽에 꿴 피어싱(고리)을 보란듯 내놓은 흑인여성.빨간색.금색 범벅의 펑크머리청년….너바나.펄 잼.케니 G의 고향인 음악도시 시애틀 다운타운의 모스 바(Moe's bar).주말인 금요일 오후9시가 가까워오자 구세군사무실을 개조한 퀘퀘한 술집이돌연 붐비기 시작한다.6달러 입장료를 내고 이들이 기다린 것은오후10시부터 시작되는 무명가수들의 라이브 공연.
바의 구석 출입구를 통해 들어서면 침침하고 자그마한 무대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첫 앨범을 출반한「댄싱 프렌치 리버럴스」의 자축공연이 오전1시까지 이어진 지난달 28일밤 2백여명의 관객이 꽉 들어찬 공연은 바로 광신도의 종교집회를 방불케했다.『잠시도 놓치고 싶지않다』며 취재진에게 길을 비키기 거부하는 청중.
객석따위는 애당초 없고 무대만을 응시한 채 서서 몸을 흔들어댄다.마약에 젖은 듯 몽롱한 눈빛의 이들에게 무대에선 자유분방한 록음악인「그런지」(Grunge.지저분하다는 뜻)를 토해 놓는다. 귀청을 찢을듯한 음향으로 단순한 리듬을 반복하자 갈기갈기 찢은 청바지,거꾸로 쓴 모자등 역시 그런지룩 차림의 청중들은 흠뻑 녹아들고 장내엔 어떤 「형식」도 자취를 감춘다.
아이러니칼하게도 1달러짜리 귀마개를 팔고 있었다.
이날 모스바가 상징해 준 시애틀 다운타운의 술집들은 바로 언더그라운드 공연의 세계적 메카다.
리버풀의 무명가수 4명이 비틀스가 됐듯 너바나.펄 잼등 「빌보드1위 가수」들이 무명으로 활동하며 전세계를 뒤흔든 스타로 큰 곳이 바로 이 곳이다.꿈을 지닌 가수들이 공연자로 나서고 가난한 음악매니어들은 6달러로 맘껏 음악을 즐긴다 .MTV조차얼터너티브 록(기존 록과는 뭔가 다르다는 뜻),그런지로 명명하고 만 무형식 음악이 여기에서 시작돼 전세계를 열광케 하고 있다. 모스바 사장 제리 에버하트(33)는『미국.영국.호주.프랑스등 세계의 무명가수 수천명이 몰려들어 꿈을 키워가는 곳이 시애틀 다운타운』이라고 말한다.바 구석에는 세계각국의 무명가수들이 보내 온 심사용테이프가 상자 가득 쌓여있고 너바나 .펄 잼등이 들러 가수들과 대화하곤 하는 낡은 소파도 보인다.
변호사였던 제리는『음악만이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확신에 6년전 변호사업을 그만두고 이 술집을 차렸다고 밝힌다.
구세군본부였던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을 사들여 카페로 개조한 이 곳은 종업원.노동자등 하류계층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가장 자유분방한 지역으로 주말엔 2천여명 정도가 모스바에 몰려든단다.
카페.스탠드바.공연장이 혼합된 이 술집은 무명화가들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벽면에 전시하는 화랑의 기능과 함께 각 카페의 언더그라운드 공연일정표,레스비언.게이소식지까지 놓여 독특한 정보공간의 기능도 한다.
이 곳 무명가수들은 카페 종업원.잡역부 생활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음악적 성공에 인생을 건다.댄싱 프렌치 리버럴스의 보컬앤디(28)도『낮엔 공립국교에서 잡역으로 돈을 번다』며『6월 시카고.뉴욕 순회공연은 물론 유럽진출까지 계획하 고 있다』고 의욕을 보인다.
이날 모스바를 찾은 니컬러스 폴리메나코스 주니어(23.사진작가겸 바텐더)는『티켓마스터(공연비즈니스 업체)의 대형공연과 달리 이 곳의 작은 콘서트는 청중을 하나의 뜨거운 감정으로 묶어준다』며 즐거워한다.
『돈벌기만을 외치는 기성세대,부모의 이혼등으로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콘서트는 안락감과 함께 치료의 기능까지 해준다』고 한다.시애틀 카페밀집지역에 있는 10여곳의 카페는 한 곳에서 입장료를 내면 다른 곳에서도 무료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것도이채.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꿈을 지닌 뮤지션들이 모여 근심을 털어버리는 모스바의 밤.묘하게도 이 곳이 고통받는 이들에게위안을 준 구세군 본부였음을 자꾸 연상케 한다.
글:崔 勳기자 사진:白鐘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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