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희생을 밟고 진전하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호 01면

노(老)사학자 이이화씨가 공천심사 과정의 마음고생으로 핼쑥해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89% 국민이 지지한다’는 얘기에 활짝 웃고 있다. 민주당사 6층 창문 뒤쪽으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최정동 기자

“역사는 희생을 밟고 진전하는 것이오.”

민주당 공천심사위의 ‘강골’ 역사학자 이이화 인터뷰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재야 사학자 이이화(71)씨는 파격적인 공천이 몰고온 파문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오랜 친구인 박재승(69·변호사) 공천심사위원장으로부터 사흘에 걸친 삼고초려를 받아 참여했다.

독학으로 재야 사학의 외길을 걸어온 이씨는 ‘정치판 근처에도 안 간다’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나선 것은 ‘역사’를 위해서다. 박 위원장은 역사학자인 이씨가 참여를 거절하자 “과거의 역사만 연구하지 말고 현재의 역사에도 참여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씨는 그래서 이번 공천을 “정치를 혁신하는 해방 이후 최초의 시도”로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참여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만난 이씨는 그래서 단호했다. 그는 7층 공천심사 회의실 앞에서 ‘억울하다’며 항의 농성 중인 설훈 의원에 대해 “부질없는 짓”이라고 일갈했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공천심사위원들과의 공개 토론을 제안한 데 대해서는 “할 말은 다 정해져 있는데 무슨 토론”이라고 일축했다. ‘환향녀도 홍제천에서 목욕하고 나면 새 출발로 인정해줬다’는 안희정 의원의 비유에 대해 “역사를 잘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이씨는 외모부터 박 위원장과 많이 닮았다. 찔러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강골들이다. 주위의 낭자한 희생에도 고개 한번 돌리지 않을 확신범들이다. 그들의 확신은 최근 여론의 지지로 더욱 굳어졌다. 이씨는 2005년 위암 수술로 축이 난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술·담배를 많이 했다. 체중이 5㎏이나 빠졌다.

휴대전화는 아예 끄고 다닌다. 며칠 새 집으로 격려 전화가 몰려오면서 힘을 얻었다. 늦둥이 대학생 딸(22)이 출근길에 “절대 용기 잃지 마세요”라며 힘을 불어넣어 준다. 딸은 위원장에게까지 전화해 “절대 물러서시면 안 된다”고 부탁했다. 이씨는 공천 과정을 세세한 기록으로 남겨 역사에 새길 작정이다. ▶ 뉴스 4p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