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 기다린 차붐 “올핸 우승 턱 한번 쏘고 싶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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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25면

뒤셸도르프에서 기차를 타고 레버쿠젠이나 쾰른으로 가다 보면 랑겐펠트(Langenfeld)라는 곳을 지난다. 단어의 뜻 그대로 길게 펼쳐진 넓은 지역이다. 뒤셸도르프에서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랑겐펠트를 지날 때쯤 주변에 앉은 승객들과 말문을 튼다. 헌팅캡을 살짝 들어 첫인사를 건넨 은발의 노신사도 그랬다. 오후의 햇살을 눈부셔하는 동양인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노신사는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용수철이 튀듯 재빨리 “아, 차붐”이라고 되받았다. 아직도 그런다.

그리고 또 그 얘기. 레버쿠젠 사람들은 지겹도록 그 얘기를 한다. 1988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말이다. 당시 UEFA컵은 챔피언스컵·컵위너스컵과 함께 유럽 클럽축구 3대 컵대회로 꼽혔다. ‘쾰른 옆에 붙은 작은 도시의 클럽’ 레버쿠젠이 유럽의 클럽컵을 차지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우승을 발판으로 레버쿠젠은 명문으로 도약한다.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에스파뇰을 만난 레버쿠젠은 원정 1차전에서 0-3으로 졌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전반을 0-0으로 마쳐 희망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후반 세 골을 잇따라 넣어 두 경기 합산 3-3을 만들고 승부차기에서 이겨 우승컵을 안았다. 차붐, 즉 차범근은 후반 36분 세 번째 골을 헤딩으로 넣었다.

이 대목에서 노신사는 목이 메었다. 그는 물었다. “차붐이 클럽팀 감독을 한다죠? 우승을 몇 번이나 했나요?” ‘한 번’이라는 대답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겹도록 듣는 얘기. ‘수퍼스타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 이건 사실 저주다. 차범근 감독도 이 저주를 풀지 못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차 감독은 감독 데뷔 첫 시즌(91년) 현대를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수원 사령탑으로서는 2004년 리그 우승(아래 사진), 2005년 A3 챔피언스컵·K-리그 수퍼컵·하우젠컵 등 3관왕에 올렸다. 범상한 사람이 올린 성적이라면 ‘눈부시다’는 찬사를 받았으리라.

현대가 준우승할 때는 지금은 사라진 대우의 전성기였다. 대우는 김주성-정용환 등 공수에 걸쳐 최강의 일레븐을 자랑했다. 그 시즌에 끝까지 대우를 추격한 팀이 현대였다. 프랑스월드컵에서의 중도하차?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나 어느 지독한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던가. 수원 삼성을 ‘레알 수원’ 운운하며 “그 멤버로 우승을 못 하면 되느냐”고 하지만 수원은 지금 차별적으로 강한 팀이 아니다.

차붐은 신의 축복을 받은 선수였다. 그는 빨랐고 유럽 선수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체격을 가졌다. 프랑크푸르트 시절 팀의 물리치료사는 “이토록 근육이 훌륭한 선수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무엇보다 그는 유럽을 밟을 수 있었고, 거기서 성공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한 차례씩 UEFA컵을 들어올렸다. 평범한 선수는 평생 한번도 맛보지 못할 행운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신의 점지’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청룡언월도를 놔두고 온 관운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 성공한 감독의 작전판에는 당대 스타들의 이름이 씌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유럽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일해 왔다. 아르센 벵어 감독이 누린 아스널의 영광은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와, 90년을 전후한 토트넘 홋스퍼의 전성기는 골잡이 게리 리네커, 천재 미드필더 폴 개스코인과 함께했다.

차범근 감독은 늘 스트라이커 부재를 호소한다. “골 넣을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기대를 걸었던 안정환도 힘을 쓰지 못했다. “스트라이커가 없는 게 아니라 활용을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 물론 할 말이 없다. 감독은 결과로 말해야 하니까. 차 감독도 언론이나 여론·팬클럽을 향해 변명을 늘어놓아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발굴하든지, 스트라이커 아닌 선수들이 골을 넣게 만들어야 한다. 2008시즌은 이 문제를 푸는 데 바쳐야 할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은 문제다. 살살 달래 풀든, 알렉산드로스처럼 칼로 베어버리든 결판을 내야 한다. 매듭만 풀면, 또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릴 기회가 올 것이다.

한국이 유럽 같은 축구 문화를 가진 나라라면, 차범근 감독의 위치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프란츠 베켄바워(독일)나 미셸 플라티니(프랑스)처럼 자국 축구의 주인 행세를 했으리라. 그러나 불평을 할 일은 아니다. 한국은 유럽이 아니니까. 기독교를 믿는 차 감독은 “어디서나 존경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그러지 못한다”는 성경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를 느낀다. 2002, 2006년 월드컵 때 방송 해설을 하면서 그는 따뜻하고 진솔한 해설로 축구팬들에게 다가갔다. 진심을 담은 그의 신문 칼럼은 고향(축구장)에서 얻지 못한 축구팬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나의 행복이 줄지는 않는다”는 명문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어찌 됐든 ‘고향’과 화해했고, 팬들과 즐거운 시즌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승하면 응원했던 모든 사람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메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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