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하이닉스, 대만에 기술 이전 말도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하이닉스반도체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해외이전 방침을 경쟁 업체인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황창규(사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7일 “선진국들도 핵심 기술은 보호하는데 (우리는)수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총회 석상에서다. 반도체협회장인 황 사장은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따른 정부 심의과정에서 업계 대표 자격으로 반론을 제기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절차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에서 기술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양대 메이커의 CEO 간 갈등이 표출된 것은 이례적이다.

해외유출 논란에 휩싸인 기술은 D램 54나노 공정이다. 하이닉스가 대만 프로모스에 위탁 생산하기 위해 이 기술을 이전해 주는 협상을 하자 삼성전자가 “국내 양산에 들어가지도 않은 첨단 기술”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것. 각각 세계 1, 2위 D램 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60나노 기술로 D램을 생산하고 있다. 대만 업체들은 80나노급에 머물러 우리와 2~3년의 기술 격차가 난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56나노를, 하이닉스는 3분기에 54나노 기술을 생산 현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은 황 사장의 지적에 대해 “설계가 아닌 양산 기술만 이전해 첨단기술 유출 우려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전을 결정해도 공장 가동 때까지 1년 이상 걸려 양산 시점에선 범용 기술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D램 시세가 폭락하면서 어려움에 빠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재편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4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외한 세계 D램 생산업체들은 모두 적자를 냈다. 특히 대만의 일부 업체는 적자폭이 매출의 80%를 넘나들 정도로 수렁을 헤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초 미국 마이크론은 대만의 난야와 공동으로 50나노 이하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일본의 엘피다는 대만의 파워칩과 합작사를 세웠다. 엘피다는 2003년부터 하이닉스와 제휴 관계인 프로모스에도 손을 벌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후발 업체들의 감산 또는 구조조정을 유도해 공급과잉을 해소해야 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면 하이닉스의 이번 기술이전은 거북할 수 있다.

하이닉스의 김 사장은 “우리가 대만에 50나노 양산 기술을 주지 않으면 외국 경쟁사들에 제휴업체를 뺏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우 기자

◇프로모스=대만 3위의 파운더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업체로 하이닉스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D램을 생산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기술이전 대가로 프로모스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받아다 팔고 있다.

◇산업기술유출방지법=지난해 8월 시행됐다. D램의 경우 80나노 이하의 설계부터 조립검사 기술을 해외로 내보낼 때는 지식경제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사안별로 수출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