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민주주의 이란성 쌍둥이 :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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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포퓰리즘
서병훈 지음,
책세상,272쪽, 1만 2000원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를 흔히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쓰이던 정치용어 가운데 하나다.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있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반대파를 몰아세울 때마다 포률리즘은 단골로 등장한다. 그렇게 자주 쓰이는 중요 용어임에도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퓰리즘의 번역어를 선택하는 데도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서병훈(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숭실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펴낸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이란 개념이 왜 모호한지를 여로 모로 생각해보게 한다. 나아가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본질과 연관시키면서, 현대사회가 포퓰리즘이란 함정을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일상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서 교수는 1988년 ‘포퓰리즘의 이념적 위상’이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 논의를 촉발시킨 계기였다는 평가다.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 개념의 모호성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숙명처럼 끌어안고 있는 난제인 셈이다. 특정 사회의 후진적 현상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한 좌파나 우파 어느 한쪽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포퓰리즘은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저자는 포퓰리즘을 현대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내포된 ‘그림자 현상’으로 이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은 대개 ‘대중 영합적 인기전술’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와 달리 포퓰리즘을 민중주의 혹은 인민주의로 번역하며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번역어 선택에 이미 정치적 입장이 반영돼 있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에바 페론(1919∼1952)의 초상화. 페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투쟁한 사회운동가’라는 찬사와 ‘포퓰리즘의 대명사’라는 비판을 동시에 듣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선악 이분법의 단순성을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 있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눠보는 방식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적 수법이다. 그런데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논리마저 선악 이분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민주주의를 팔아먹으며 말로만 인민 대중을 앞세우고 결국엔 소수 정치인의 지배로 귀결되는 포퓰리즘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엘리트주의로 역행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저자의 문제의식이 놓여있는 지점이다. 유권자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겉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점을 주목한다.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명분과 현상타파를 내세운 포퓰리즘에 인민 대중은 속고 또 속는다. 겉옷만 민주주의인 포퓰리즘을 속옷까지 민주주주의 내실로 채우는 방안은 없을까. 민주주의는 인민 대중을 주인으로 떠받드는 정치체제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포퓰리스트가 재생산되는 자양분임을 이 책은 반성케 한다. 아울러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지나쳐 대중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불신까지 공공연하게 피력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유권자의 인기를 먹고사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이란 점에서 정상적인 정치와 포퓰리즘을 구분해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저자는 ‘인민에 대한 호소’와 ‘선동적 정치인에 의한 감성 자극적 정치’를 중심축으로 포퓰리즘을 정의해보자고 제안한다. 이어 포퓰리즘을 굳이 번역한다면 “민주주의로 포장한 대중 정치운동”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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