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소득 1만弗시대의 成長活力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고추는 매운 맛을 내기 위한 식품이다.만일 고추가 맵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그것은 이미 고추가 아니다.
과거 우리의 생활이 궁핍했을 때 우리 음식은 대체로 맵고 짰다.적은 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하자니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맵거나 짠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그렇다고 고춧가루나 간장이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 니다.전보다이들 양념을 덜 쓰고 있을 뿐이지 우리 음식은 여전히 맵고 짠편이다. 지난 30여년간 우리사회를 지배해 온 문화는 「빨리빨리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에 불이 붙자 우리는 빨리빨리 움직였다.각 분야에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벅찬 목표를 정해 놓고도 이를 더 빨리 달성 하기위해 동분서주했다.그 덕분에 1백달러가 채 안되던 국민소득이 순식간에 1만달러로 늘어났다.
이렇게 엄청난 성과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목표달성에 집착한 나머지 수단이나 방법면에서 무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작용을 두려워해 무리하지 않고 조심했다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토록 큰 성과를 거둘수 있었겠는가.
과거의 무리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는가 하면 가스가 폭발하기도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언제라도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이러한 현실도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 보다 앞당겨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의 대가라고 생각하면서 몇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사고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다.대답은 특정분야,특정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이 마당에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나는 책임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지난 수십년간 우리가 살아온 스타일,우리가 만들어 낸 문화의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부작용이 있다고 해 그 동안의 성과를 외면해서는 곤란하다.부작용은 부작용대로 다뤄 나갈 일이지 이를 앞세워 그 동안우리가 피땀흘려 이룩한 발전의 성과나 특유의 문화를 송두리째 부인해서는 안될 일이다.
셋째,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지금 우리는 분명히 달라져야 할 시점에 와 있다.개발전략이나 방법이 달라져야 하고 사고와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빨리빨리 문화」에서 탈피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기 이름을 떳떳하게 새길 수 있는 작 품을 남기겠다는 자세로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문화를 정착시킨답시고 무작정 일을 지연시켜서는 안된다.우리는 아직도 중진국의 선두 또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을 뿐이다.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처질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의시대에 살고 있다.우리가 지향하는 고소득 복지국 가를 만들자면여전히 갈길이 멀다.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경제는 1만달러 소득수준에 다다른 지금도 7~8%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이 정도의 소득수준에 이르면 성장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다른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경험이다.따라서 우리는 이 성장활력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대로 6~7년만 더 가면 2만달러 소득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식당에 가서도 앉자마자「빨리빨리」를 외치는 조급함이 어쩌면 우리의 국민성인지도 모른다.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국민이나 민족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이다.
단점을 고치자고 장점을 망가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좀더 잘 살아 보겠다고 몸을 던져 열심히 일하는 성급함 그 자체가 아니다.성급함 때문에 나타나기 쉬운 부작용을 경계하고 고치기만 하면 된다.
맵지 않으면 고추가 아니듯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면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고칠 것은 고치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자.적어도 앞으로 10년은 더 지금까지와같은 그런 자세의 기본을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