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부 팔고 100권째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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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00권째가 나온다. 민음사는 8일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최종철 역)와 '춘향전'(송성욱 편역)을 각각 세계문학전집 99번째, 100번째로 정하고 오는 15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 직후인 1998년 8월 전집 첫 책인 '변신 이야기'가 출간된 지 5년여 만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00권 출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전집이 시장에서 거둔 '의외의' 판매 결과 때문. 출판사에 따르면 98권째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 2'까지 전집의 누적 인쇄부수는 약 100만부다. 권당 평균 1만부씩 찍어낸 셈이다. J. D. 샐린저의 장편 성장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15만부를 찍었고, '동물농장' '데미안' 등이 5만부 안팎씩 고르게 인쇄됐다.

민음사 전집의 선전은 교보문고 판매 집계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가 출판사별 세계문학전집들의 지난해 판매 부수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민음사 전집에서 가장 잘 팔린 '호밀밭의 파수꾼'과 '데미안'은 범우사.소담출판사.혜원출판사 등 다른 출판사 전집의 1.2위 판매 작품보다 두배 넘게 팔렸다.

민음사는 ▶비교적 최근인 60~70년대 작품들과 중남미 등 제3세계의 작품을 전집에 포함시켜 다양성을 꾀한 점 ▶중역(重譯)을 피하고 해당 언어 전공자가 번역한 점 등이 독자들의 관심을 부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책이 '경박단소'한 것도 인기 요인. 원작자와 직접 계약을 한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출판사(史)적인 의미도 있다.

김우창.유종호씨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민음사 전집의 간행사는 "세대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하듯이 문학사.예술사도 새롭게 써져야 하고,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은 더이상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국내 세계문학전집 출간사의 맨 끝자락에 자리한 민음사로서는 당연한 차별화 전략일 듯하다.

세계문학전집 도입 초창기에는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50년대 후반 전후의 혼란이 가라앉자 일반 독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서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을유문화사.정음사.동아출판사 등이 경쟁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했다"고 회고했다.

세 출판사 이후 세계문학전집의 계보는 신구문화사.동화출판공사.중앙일보사 등으로 이어진다. 유씨는 "80년대 후반 노벨문학상 특수가 사라지고, 80~90년대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국내 문학작품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의 인기는 시들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치수씨는 "60년대 초반 출간된 신구문화사의 '세계전후문학전집'이 최신 작품들을 중역이 아닌 직접 번역을 통해 소개했다는 점에서 이전 전집과는 구별되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다"고 말했다. "영.미권의 비트 문화, 일본의 태양족, 프랑스의 누보 로망, 독일의 48그룹 등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세계문학의 최신 조류를 접할 수 있어 문학 전공자나 지망생들에게 필독서였다"는 것이다.

초창기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세계문학전집은 주로 방문.할부 방식으로 판매됐다. 김치수씨는 "60~70년대엔 집의 서가에 전집 한 종류 없다면 민망해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판매가 활발했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에는 범우사.혜원.벽호.소담.하서.신원.일신서적.육문사.청목 등의 세계문학전집이 나와 있다. 범우사의 윤형두 사장은 "전집을 15권에서 20권씩 묶어서 팔지 않고 낱권 판매한 것은 우리 출판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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