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들어떻게자라나>5.아동학대 친부모가 절반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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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빠가 너무 때려서 엄마가 집을 나갈 때마다 저는 죽은거나마찬가지예요.팔을 물어뜯고 물이 가득 찬 욕조에다 머리를 처박기도 하거든요.더 무서운 건 엄마한테 전화를 걸게 하고는 아빠가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고 온갖 욕을 하면서 그걸 엄마한테 다시 되풀이하라는 거예요.』(11세 남자 어린이)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엄마가 잠자리에서 괴롭히기 시작했어요.요즘은 거의날마다 두세차례나….』(중1 남학생)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에 접수된 실제 상담사례들이다.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는 정신나간 사람 또는 친부모가 아닌 어른들이나 저지르는 짓으로 여기지만 결코 「특별한 일부계층」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에서 85~93년에 접수한 아동학대 신고사례2백31건 가운데 친아버지(42%)와 친어머니(7%)가 학대한경우가 절반을 차지한다.딸을 때려 죽인 치과의사 아버지,아들을쇠사슬로 묶어놓고 상습적으로 때린 택시기사 아버지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는 학대사례들도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가정의학회 회원과 소아과전문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신체적 학대로 심하게 다친 67건 가운데 두개골을 포함한 신체부위 골절이 16건,복강과 뇌출혈이 8건,사망이 6건에 이른다. 그러나 현행 아동복지 제도나 법 체계 안에서는 부모의 요청이 없는 한 가족내 아동학대에 제3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아동복지법 제18조가 아동학대를 금지하는 유일한 규정.그러나 그 규정이 매우 모호하고 벌칙도 미약하다.더구 나 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시행령과 시행세칙이 없어 구속력도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법에 의해 처벌된 사례는 한건도 보고된 바 없다.
이런 상황인지라 공무원이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고자 가정에 들어가면 「가택침입죄」,데리고 나오면 「유괴죄」를 범하게 된다. 학대받는 어린이는 물론 어느 사회에나 있다.그러나 어린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체계 유무와 서비스가 그 사회의 인권존중.
사회복지.사회의식 수준을 드러낸다.
아동학대에 관한 선진각국의 연구자들은 신체적 학대가 부모.보호자의 스트레스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고 밝힌다.최근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도시화 현상에 따라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라든가,자신들의 문제 때문에 의 도하지 않은채 자녀에게 엄청난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는 「집안 문제」니까 가족들끼리 알아서하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발상이다.부모나 그밖의 가족들이 제 기능을 할수 없을때 사회가 적절히 개입해 어린이를 보호하고 또 가족 전체의 화목을 도울수 있을때 진 정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가 된다.
아동학대를 예방.발견.치료하기 위해 우선돼야할 것은 아동학대의 정의부터 확실히 내리는 일이다.아동학대란 무엇이며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하고 또 적절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그 정 의가 확실해야 한다.
아동복지법도 시급히 보완돼야할 점들이 많다.현재 보호자의 신고 없이는 아동학대의 치료나 예방을 위한 사회의 개입이 불가능한데,법적으로 아동학대를 발견한 교사.사회복지사.의사 등의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네덜란드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이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운영하고있는 비밀신고제도를 활용하는 것도바람직하다.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부터 사후조치에 이르기까지 직접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를 체계적으로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부모들은 학대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충동통제.내부자원.지원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대 가능성을 억제할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 의대 매릴린하인스교수의 이야기를 다함께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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