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악 보존에 바친 외길인생 8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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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원로 국악인 성경린(사진)씨가 5일 오후 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한국 궁중음악의 대부인 성씨의 국악 인생에는 한국의 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처음 국악을 시작한 것은 15세이던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에 입학해 거문고와 종묘제례악을 배웠다. 국악을 맡아 왔던 장악원이 일제시대에 들어 많이 축소돼 이왕직 아악부로 바뀌었으며, 양성소는 아악생을 길러내는 기관이었다. 그는 “이곳을 수석 졸업해 월 30만원을 받으며 이왕직 아악부에서 일하겠다”는 메모를 공책에 적어 놓고 공부했다고 한다.

광복이 됐지만 국악계는 더 어수선했다. 아악부가 해체되고 성씨를 비롯한 연주자들은 적을 둘 곳이 없었다. 일부 연주자들은 ‘구 왕궁 아악부’라는 간판을 걸고 종로구 운니동에서 궁중음악 기관의 재건을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국립국악원이 설립된 것이 51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성씨는 부산으로 옮겨가 궁중음악의 맥을 이어야 했다.

고인은 궁중음악의 보존을 위해 한길을 걸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유자로 지정됐다. 국립국악원의 2대 원장(61~72년)과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72~77년) 등을 지냈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과거 궁중에서만 연주되던 음악인 아악이 공연장으로 옮겨 오는 시대였다. 고인은 라디오에서 직접 대본을 쓰고 해설을 하는 등 대중과 만나며 국악의 자생력을 높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2000년 기탁한 1억700만원은 국악계 후배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이 기금으로 마련된 ‘관재 국악상’은 3년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탁연(在美), 딸 정희(주부)씨 등 3남 4녀가 있다. 7일 오전(시간 미정) 용인 보정성당에서 영결미사가 열린다. 빈소 분당 서울대학병원. 031-787-1503.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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