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차 환율 악몽 ? 돌아온 ‘환율 매파’ 강만수·최중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3차 환율 전쟁이 시작되는 것일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환율시장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외환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임 일성으로 “환율을 시장에만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나”고 포문을 열었다. 4일엔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환율정책과 상반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제1차관은 그동안 외환시장 개입을 적극 주창해 온 인물들이다.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를 건강하게 가져가기 위해 원-달러 환율이 낮아서는 곤란하다(원화 약세)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번번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MB노믹스의 기본 철학과도 맞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범한 기획재정부의 강만수 장관(右)과 최중경 1차관이 3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현판 제막식을 가진 뒤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환율 상승을 용인하지 않은 1라운드=1995년 5월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200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무표정하던 김 대통령의 얼굴이 환해졌다. 실제로 그해 1인당 국민소득은 1만76달러로 집계됐다.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환율이었다. 원-달러 환율이 낮을수록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95년 4월부터 2년 동안 일본 엔화가 달러에 대해 50.9% 절하(환율 상승)되는 동안 원화는 17.1% 절하에 그쳤다. 수출업체들은 아우성이었고, 경상수지는 악화돼 96년 237억 달러의 기록적인 적자를 냈다. 시장 수급에 맞춰 900원 이상의 원-달러 환율을 용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다가오며 원화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던 97년 7월에도 원-달러 환율은 900원을 넘지 않았다. 경상수지는 계속 적자였고, 그해 11월 외환위기로 치달았다.

국회 환란특위는 99년 “원-달러 환율을 제때 조정하지 못해 외환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결론냈다. 강 장관은 97년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

◇환율 하락을 막은 2라운드=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4월. 내수가 부진해 수출밖에 기댈 데가 없었다. 달러당 1250원이었던 원화 환율이 열흘 만에 1200원 선으로 떨어지자 정부는 수출마저 위축될까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은 “환율 급변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투기 세력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때부터 7개월 동안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 14조원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었다. 당시 시장개입을 주도했던 최중경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은 무한대”라는 말도 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손실 위험이 큰 파생상품이 거래되는 역외선물환시장(NDF)에도 개입했다.

시장을 거스른 대가는 컸다. 파생상품 거래 손실은 확인된 것만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최 국장은 손실에 대해 “외환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말했다.

◇3라운드는?=강 장관은 환율이 국가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믿는 ‘환율 주권론자’다. 환율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장관은 환율에 대해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환율을 일정 수준에서 묶어놓는 고정환율제를 선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 가운데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없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외환시장 딜러는 “얼마 전만 해도 달러를 내다팔기 바쁘던 수출업체와 금융회사들이 강 장관 취임 이후 달러 매도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세계적으로 달러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서울 외환시장에선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강 장관 발언은 그간 시장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외환거래량이 10년 새 11배나 늘어난 465억 달러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면 물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며 “환율로 수출이나 성장률을 높이려는 조치는 부작용이 큰 단기 처방”이라고 말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역외선물환시장(NDF)=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형성된 선물환시장으로, 자국의 규제를 피해 조세·행정·금융 등에서 특혜를 누리려는 투자자들이 이용한다. 홍콩·싱가포르 등에 있다. 2000년 이후 원-달러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NDF가 서울 외환시장 환율 결정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