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과학화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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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서 '명의'란 무엇일까. 환자의 질병과 체질에 따라 정확하게 약과 침구를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경험방에 의존하다 보니 한의사의 실력에 편차가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과학화.표준화.객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는 14일 한약물유전체학회가 출범한다. 한의학을 첨단과학에 접목하는 첫 단추를 꿰는 것이다. 회장을 맡은 경희대 한의대학장 신민규 교수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한의학은 도전받고 있습니다. 서양의학이 검증의 학문으로 무장할수록 개인의 비방(秘方) 또는 경험에 의존하는 한의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한의학의 과학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시대의 명제라는 것.

그렇다면 왜 한약물유전체학일까.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런저런 약으로 치료가 어렵던 환자에게 감초.검은 콩.오수유 등 약재를 처방했더니 염증과 가려움증이 줄어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환자의 혈액을 뽑아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인터루킨-4라는 유전자의 551번째 코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전형의 환자에겐 설명했던 약물을 투입해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방의 강점인 체질을 분석하는데도 활용한다. 사상의학적으로 태음인은 어떤 유전자타입을 가졌으며 팔상의학에서 목양경락형은 어떤 유전자에 특이한 변이가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한방의 진단법에도 변화가 온다.

"종전에는 4진법, 즉 보고(望診).묻고(問診).들어보며(聞珍).진맥(切診)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지요. 여기에 혈액을 뽑아 검사하는 진단법이 추가되겠지요."

첫발은 내디뎠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수많은 임상 데이터가 수집돼야 하고, 데이터를 분석할 연구인력 확보와 연구비가 따라주지 않는다.

"한약을 세계적인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해선 한약물유전체학의 발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한의학계뿐 아니라 의학계.유전학계의 전문 인력도 충분하고, 연계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연구비입니다. 이를 확보하는 것이 제 몫이기도 하고요."

한약물유전체학회는 14일(일) 오전 10시~오후 5시 서울교육문화회관 별관 1층 한강홀에서 배현수(경희대 한의대).고성규(상지대 한의대)교수와 박문백(청뇌메디컬네트워크)임상연구팀장을 초청, 창립 세미나를 개최한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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