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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살롱>鄭良謨 중앙박물관장 부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도자기 연구의 대가」가 사는 집인 만큼 청아한 백자나 비취빛 청자가 집안에 그윽한 정취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산이었다.서울은평구녹번동 단아한 양옥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눈에 들어온 것은 허름한 받침대에 놓여진 이름없 는 제기(祭器)와 주책없이(?)크기만 한 대형 도자기 3개가 전부.
『이렇게 누추한데 찾아오셔서 어쩌나.자랑할 것도 없고 할 얘기도 없는데….』 자신을 낮추는 것이 몸에 밴 단풍나무집 안주인 이중원(李仲瑗.53)씨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겸손이 듬뿍 담겨있었다.우리 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인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鄭良謨.61)관장의 평생 반려자이자 비운의 국학자 위당(爲堂)정인 보(鄭寅普)의 막내 며느리.
역사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가계(家系)의 안살림꾼이지만 그는 절제와 품위의 안방마님보다는 수더분한 이웃집 아줌마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뒤 「분청사기 대접」논문을 쓰기위해 중앙박물관을 찾아갔다가 관장님(그 는 남편을 이렇게 부른다)을 만났죠.』鄭관장의 부드러움 성품과 일에 대한열정에 반해 유학계획도 포기하고 67년 결혼한 李씨는 위당가문의 며느리로서 혹독한 과정을 겪게 된다.풍족한 집안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커온 그에게는 당시 단지 8 천원하는 남편의 월급으로 일곱식솔의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하는 「뚝섬 시댁」은 또 다른 세계였다.
『친정아버지가 금융조합장이었기 때문에 수백평의 사택에서 자랐는데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문간방에 신혼살림을 차려놓고 보니 걱정이 앞서더군요』.밥짓고 빨래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못한부잣집 외동딸에게는 가난이 너무 힘에 부쳐 남몰 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이때 그에게 자상하게 삶의 가치를 가르쳐준 분이 시어머니인 조경희(趙慶姬.79년작고)여사였다.납북된 남편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어 절대 검은 댕기를 하지 않았던 시어머니는『우리 집은 조선이 다 아는 가난한 집안이다.우리가 돈을 벌면이상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식객들 음식대접을 평생봉사로 생각한 분. 그는 위당을 잊지않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불평 한번 안하고없는 살림에도 꼭 밥 한그릇이라도 내놓는 시어머니의 넓은 마음에 감동했단다.그러면서 시어머니가 정성껏 만드는 순 서울식 음식을 그대로 배워 이제는 음식솜씨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꼴뚜기젓으로 담그는 감동젓 깍두기,버섯을 넣고 푹 끓이는 두부전골,찹쌀과 두텁가루로 맛을 내는 두텁단자,귤로 만든 귤수정과,오미자차에 보리를 띄운 보리수단….
듣기에도 생소한 음식이지만 위당집안의 상징음식처럼 알려진 것은 순전히 그의 노력 덕분이다.
큰아들 진원(28.홍익대 공예학과 대학원)이와 막내 상진(23.청주대 성악과)이가 결혼하면 며느리들에게도 「위당 집안의 손맛」을 꼭 전수하겠다는 그야말로 이조백자같은 소박한 주부였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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